모든 게임

<페이퍼 플리즈> : 위대한 국가의 불안한 하루

WONO.ONE 2023. 2. 5. 14:53

 

 게이머는 자신이 '일'을 하고 있다고 자각하는 순간 현실로 이탈한다. 이것은 소위 한국형 MMORPG 장르에서 자주 발생하는 부작용이었다. 5개의 광물을 캐고, 약초 10개를 따고, 몬스터 20마리를 잡고 옆 마을 이장에게 편지를 전해주는 퀘스트는 '플레이'가 아닌 '일'이다. 이런 '업무'가 반복될 수 록 게이머는 ‘재화’ 보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컴퓨터의 전원을 꺼버린다. 물론 몰입에서 이탈하는 비극에는 디자이너의 책임이 크다.
 반면 게임 <페이퍼 플리즈>는 게임의 설명을 읽는 순간 ‘플레이’로 위장된 ‘일’을 극도로 혐오하는 게이머들이 실소를 터지게 한다.

 주인공은 가상의 공산주의 국가 아스토츠카에 살고 있는 이름 없는 소시민이다. 그는 노동 복권에 당첨되어 입국심사관이 되어 8등급 아파트를 배정받는다. 그리고 국경 검문소에서 하루 12시간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게 된다.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 기성세대를 입장에서는 지금까지의 설명만 잃어도 무언가 이상함을 느낄 것이다. ‘디스토피아 서류 스릴러’라는 독특한 장르를 표방하는 이 게임에는 마왕에 맞서 싸우는 전사도 없고 없다. 최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현대전의 무기도 없으며, SF 속 웅장한 우주선도 없다. 게이머에게 주어진 무기는 입국 허가, 입국 거부 도장 2개가 전부다. 
 물론 입국 심사관의 일상은 좀비 아포칼립스의 세계나 전쟁터에 떨어진 다른 게임의 주인공들보다 안락할 것이다. 적어도 목숨의 위협을 받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노동복권으로 일자리를 지정해주는 국가가 정상일리 없다. 

 <페이퍼 플리즈>는 국경 검문소라는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1인칭 시점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주인공 입국 심사관은 매일 정부의 지침에 따라 입국장에 들어오는 시민들의 여권, 신분증, 체류허가증을 읽고 문제가 없으면 입국 허가 도장을, 틀린 점이 발견되면 입국 거부 도장을 찍어야한다. 만약 잘못된 도장을 찍을 경우 탁탁탁 하는 신경질 적인 효과음과 함께 경고장이 작성된다.
 경고장이 쌓이면 봉급이 삭감된다. 봉급이 삭감되고 식비와 난방비를 내지 못하면 그의 아내, 아들, 장모, 삼촌은 굶거나 얼어 죽는다. 절대 마음편한 상황이 아니다.
 실수하면 괴로운 효과음과 함께 경고장이 발급되는 패널티는 자신이 감시받고 있다는 불안감을 준다. 불안감은 게임의 시작과 끝을 지배하며 게이머로 하여금 아스토츠카의 입국 심사관의 일상에 몰입하게 만든다.

 수많은 입국희망자를 보면 아스토츠카는 나름 살만한 나라처럼 보이지만 하루하루 업무를 진행하면 할수록 공산주의 사회의 부조리가 드러난다. 정부는 사회적 안정을 보장해 주기는커녕 언제든지 자신의 기준에 맞추지 못한 시민을 강제수용소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그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게이머로서 높은 스코어를 달성해도) 아스토츠카가 테러, 외교마찰, 전염병으로 국가적 위기 상황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검문소에서 확인해야 할 서류와 지시사항은 늘어가기만 하고, 업무는 복잡해진다. 후반부에는 생활비까지 늘어나면서 가족들의 삶은 더더욱 피폐해진다. 그래서 <페이퍼 플리즈> 업무 종료는 클리어의 쾌감이 아닌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갔다는 안도감에 가깝다.

 가족들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하는 와중에 불쌍한 사연을 가진 입국희망자들이 잘못된 서류를 들고 찾아와 사람의 양심을 건드리는 부탁을 한다. 나는 그들의 불쌍한 사연을 듣고 입국허가 도장을 찍어 인정을 보여주거나 규칙에 따라 입국거부 도장을 찍어야 한다.
 보통 게임에서의 도덕적 판단은 취향의 반영, 플레이 방식에 따란 전술적 선택과 연관이 있었다. 때로 유저들은 개인적인 옳고 그름의 판단을 떠나서 가장 높은 보상을 주는 선택을 했다. 하지만 <페이퍼 플리즈>의 선택은 단순히 선한 행동에 보상을 주고, 악한 행동에 패널티를 주는 이분법이 아닌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게이머의 내적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종종 현실에서도 사람은 호의와 규칙 사이에서 고민한다. 물론 규칙을 이유로 상대방의 부탁을 거절하는 행위는 씻을 수 없는 앙금으로 남게 되지만 문제는 우리 모두 체제의 구성원으로서 입국 거부 도장을 찍을 수 밖에 없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점이다.
 친절을 베풀기 위해 사소한 규칙을 위반하고 싶어도 그 친절의 쌓이면 가족의 생계가 위협받는다. 체제는 항상 주인공을 매의 눈으로 감시하고 있으며 상관조차 부패한 인물이다. 심지어 체제의 전복을 노리는 이들까지 검문소에 나타나면서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고 있는 주인공까지 위험에 빠트린다. 이 상황에서 주인공을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것이 밀수업자 조르지 영감 한명뿐이라는 사실이 매우 아이러니하다.
 근본적인 문제는 서류를 준비하고 또 서류를 검토하는 개개인이 아닌  시스템 자체에 있다. 아스토츠카는 국가를 위해 시민이 존재한다. 입국심사관이 마주하는 선택의 딜레마는 국민을 노예취급하는 체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페이퍼 플리즈>는 국경검문소라는 한정된 배경에서 시각, 청각적 효과를 통해 공산주의 사회를 설득력 있게 묘사한다. 물론 이 부조리는 공산주의를 넘어 시스템을 위해 구성원이 존재하는 구조적인 모순을 가진 모든 체제와도 연관된다. 
 끊임없는 불안감, 선택의 딜레마 속에서 게이머는 최악의 상황에서 진행되는 '일' 조차 입체적이고 사실적인 체험으로 받아들이며, 현실로 이탈하지 않고 게임에 몰입한다.

 게임은 체험이다. 당신은 아스토츠카를 떠날 수 있다. 아니면 새로운 정부의 탄생을 지켜볼 수 있다. 혹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이 지옥같은 아스토츠카를 체험했다는 경험만이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