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들은 주인공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검과 방패를 든 10대 후반의 소년? 아니면 멋진 콧수염을 지닌 이탈리아인 남성? 공통적으로는 두 발 달린 인간이 떠오를것이다.
 <스트레이>는 두 다리가 아닌 네 다리로 걷는 3인칭 어드벤처 게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마주치는 평범한 공간 즉 길거리, 뒷골목, 계단, 창문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게임 플레이적인 측면에서도 새로운 체험을 제공한다. 덕분에 그 고양이는 낮은 시점에서 인간이 사라진 현실을 마주한다.
 <스트레이> 스토리텔링은 매우 자연스럽다. 익숙한것 같지만 익숙하지 않은 스테이지를 탐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설정을 전달하며 또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은 멸종되었고 게임에서 마주치는 NPC는 인간의 모습을 모방한 로봇들이다. 인간은 오직 게임 밖에 있는 게이머 1명 뿐이다.
 사이버펑크는 자주 기술발전의 위험성과 인간성의 결손에 다루곤 한다. 이 게임의 흥미로운 설정은 그 로봇들이 모방하는 인간의 모습이 긍정적인 것 뿐만이 아니라 부정적인 면까지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로봇들은 그 '인간성의 결손'까지 모방한다
 반면 고양이는 대사가 없으며 강렬한 강점표현도 없다. 게임속에서 대사가 있는 것은 드론과 로봇들 뿐이다. 하지만 이런 과묵한 주인공은 게이머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게임의 마지막 고양이는 자신을 희생하고 작동이 정지된 B-12에게 얼굴을 비비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그 옆에서 잠을 청한다. 마치 이 장면을 보기 위해 이 게임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것은 힘찬 외침보다 더 큰 울림이 되어 게이머에게 전달되며 인간성보다 더 소중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잠에서 깨어난 고양이는 밖으로 나가기 전 게이머를 한번 바라보고 원래 있던 곳으로 사라진다. 고양이는 B-12의 말을 모두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발로 걷는 게이머는 고양이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 이별과 아쉬움을... 이제 게이머는 고양이가 살 수 있는 세상에 대해 잠시 사색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캣맘이 되라는 것은 아니다.

 

detention
1. (특히 유치장·교도소에서의) 구금[구류]
2. (학생에 대한 벌로서) 방과 후 남게 하기

 

 솔직한 이야기로 나는 이 게임을 재미로서는 높게 평가하고 싶지 않다. 솔직히 시스템만 보면 노잼이다. 장르적인 특징을 생각해봐도... 공포게임으로서 뭔가 대단히 혁신적인 무언가를 보여주진 않는다. 등장하는 적들도 딱히 대단히 무섭지 않다.

 하지만 다양한 상징들을 통해서 사건의 진실을 드러나면서 이 게임은 명작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비디오 게임의 정의를 디지털 매체를 통한 리얼한 경험이라고 했을때 <반교 -Detention->은 내가 살아본 적 없는 그 시대의 소름끼치는 광기를 리얼하게 체험하게 한다. 이 게임의 본질적인 목표는 생존이나 퇴마가 아닌 속죄다. 게임의 후반부 그림자와의 문답에서 정답이 바로 주인공 레이신의 행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속죄한다고 해서 레이신은 천국은 물론 지옥도 가지 못할 것이다. 그 지은 죄가 너무 크기에 용서는 커녕 스스로의 속죄도 쉽지 않을 것이다.

上不走天庭, 下不進地獄。
천국의 문은 열릴 기미가 없고, 지옥에서도 손사래를 치네.
고립무의한 자여, 끝없이 방황하리라.
가엾도다. 가여워...

 

 스토리의 근원이 되는 한 소녀의 질투는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해프닝에 불과했지만 서슬퍼런 독재의 시대는 그것으 무고한 사람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역사속에서 어지러운 시대에 태어난 사람의 삶이 너무나 쉽게 무너지는 것을 많이 봐왔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대만의 제작사 레드 캔들 게임즈가 만든 <반교 -Detention->을 클리어했다는 것은 정말 다행이도 그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것은 대만과 대한민국에서는 적어도 그렇다. 그리고 아직 이 게임을 할 수 없는 같은 시대 다른 공간의 게이머에게 이 게임의 스팀키 하나를 보내고 싶다.

 

 나와 어머니가 생각하는 아버지의 이미지는 고든 램지이면서 맥가이버였다. 아버지는 재료만 있으면 못하는 요리가 없었으며, 공구만 있으면 고치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이런 아버지가 있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정말 아버지는 어디에서든 자랑할 만한, 단점을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거인이었다.

언젠간 나도 더 이상 아버지를 볼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오래전에 떠나간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지금처럼 구현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지만, 언젠가는 그 사람의 영혼을 업로드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그 영혼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을까? 갑자기 내 방문을 두드리며 야식을 챙겨오는 그 모습, 고장 난 전자제품을 새것처럼 고쳐주는 모습을 영원히 내가 원할 때마다 다시 볼 수 있을까?

아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 산나비를 부르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내가 원할 때마다 다운받을 수 있다면, 오히려 그리워지지 않을 테니까...

 

 개인적으로 이 게임이 보여준 초현실적인 분위기보다 더 마음에 드는 부분은 원작이 가진 요소들이 하나의 액션어드밴처로서 적절하게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단순한 배경이 아닌 게임플레이의 엄밀한 요소가 되는 스테이지 기믹, 적, 아이템, 스토리를 구성하는 작은 목적들까지...  원작이 있는 게임은 종종 그 원작의 개성을 살리지 못하거나 원작이 개성을 살리면서 기본 게임의 문법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라는 원작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마치 처음부터 게임을 위해 기획된 것 같이 자연스러우며 그 만큼 이 우울한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된다. (물론 그만큼 원작이 위대한 작품이라는 방증일지도)

 대신 그만큼 게임 자체의 시스템적인 완성도가 조금 더 높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든다.

 

 첫 번째 챕터가 끝난 후 자연스럽게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전편에서 보여주었던 아쉬운 부분들은 사라지고, 정말 서부극다운 시스템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집중’과 ‘죽음의 감각’ 시스템은 서부극을 배경으로 한 FPS의 개성과 매력을 크게 살려준다. 전편에서 존재감이 희미했던 무기들이나, 스토리를 위해 억지로 반복해야 했던 노동 같은 요소들도 대부분 개선되었다. 게다가 연출마저 훌륭하다.

 이 게임의 스토리는 서부 시대의 한 주점에서 주인공 사일러스 그리브즈의 무용담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시간 순서도 뒤섞여 있으며, 주인공이 말을 바꾸면 스테이지의 형태나 등장하는 적들까지 달라지는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황소머리 주점에서 손님들이 그의 이야기가 진짜인지 논쟁하는 장면에서는, 플레이어 역시 자신이 지금까지 경험한 이야기가 과연 어디까지 진실인지 자연스럽게 고민하게 된다.

 물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부극이라는 시대적 배경상 사용할 수 있는 무기의 다양성이 부족하다. 현대전을 배경으로 한 FPS에서는 스테이지와 적의 특성에 따라 무기를 교체하고, 새로운 장비를 획득하는 기대감과 전략적인 재미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 게임은 라이플, 샷건, 리볼버, 다이너마이트 정도로 무기의 범위가 제한된다. 다만 서부극이라는 장르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한계이기도 하다.

 비록 속편이 나오지 않더라도, 이 게임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오래 기억될 가치가 있다. 원래 모든 무용담에는 약간의 허풍이 섞여 있는 법 아닌가? 그리고 그 허풍이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만든다면, 약간의 소금과 후추 정도는 얼마든지 뿌려도 괜찮을 것이다.


 나는 유비식 오픈월드가 그렇게 싫지는 않다. 물론 단점은 많지만 생각없이 시키는 대로 하고 싶을 때 딱 좋으며 스토리가 좋다면 몰입감이 크게 망가지지 않는 것이 유비식 오픈월드다. 하지만 주인공 없는 시스템은 이 게임에 몰입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주인공 없이 이 세계의 구성원들을 데드섹의 일원으로 영입하여 상황에 맞게 캐릭터를 바꾸어가며 플레이 하는 시스템 자체는 참신해보이지만 컨셉 플레이에 관심 없는 게이머 입장에서는 하등 쓸모가 없다. 차라리 주인공을 1명으로 고정하고 영입이 아닌 신분을 복제하는 방식이 더 좋지 않았을까? 게다가 게임에서는 비폭력 플레이를 강요하지만, 잠입에 대한 시스템 설계도 빈약하고, 실제 비폭력 플레이에 맞는 캐릭터들로 게임을 진행하면 난이도가 올라간다. 결국 강력한 화력을 가진 요원으로 플레이 해야만 수월하게 게임이 진행된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별로지만 등장하는 악역들은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악역 스카이 라슨의 집 지하에 마련된 저택 연구소 스테이지는 강렬했다. 하지만 주인공 없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미션을 이끌어가는 요원과 악역과의 연결고리(아치에너미, 혹은 복수, 단죄 의지)가 부족하다. 물론 게이머는 나 자신이지만 게이머 스스로의 생각과 관점을 표현할 방법이 없으니 시작부터 끝까지 관전자로 남아있는 느낌이다.
 게임의 후반부 데드섹의 조력자였던 베글리가 적의 음모를 막기위해  AI로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장면, 그리고 겨우 살아님은 깨끗한 베글리가 자신이 원본이었던 인물과 만나는 장면은 매우 감동적이지만 그 장면의 주체가 되는 요원이 게이머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 점은 너무나 아쉽다.

 그나마 DLC에서 전작의 주인공 에이든과 렌치가 등장하면서 그들의 서사가 안정적으로 완결되면서 개발자들이 주인공들을 존중하는 형태로 게임이 마무리 된 것은 다행이었다.

 와치독 시리즈는 AI, 로봇, 드론의 기술의 여명이 시작되는 (혹시 이미 시작된) 지금 시대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을 소제로만 사용했지 더 깊은 사유를 해내지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한장이 홍콩의 우산시위를 연상케 한다는 중국인들의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자 권위주의, 감시사회, 기술중심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은 게임을 만든 유비소프트는 빛의 속도로 사과했다. 원래 유비소프트는 그런 주제를 다룰 깜냥을 가진 회사는 아니었던것 같다.


 오타쿠 청년 트래비스 터치다운은 통신판매로 빔 카타나를 구입한다. 우연히 실비아 크리스탈이라는 미모의 여인을 만나 헬터 스켈터를 암살하는 일을 맡게 된다. 트래비스가 헬터 스켈터의 대가리를 따는데 성공하자, 암살자들의 통치 단체인 미국 암살 협회(UAA)에 의해 No.11을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실비아의 킬러 배틀 참가 제안을 받고  No.1이 되기 위한 도전을 시작한다.

 이 게임은 막타를 칠 때 wii 리모컨을 한쪽으로 튕겨야 하는데 이 과정 자체가 반복적이며 손모가지를 아프게 한다. 차리리 특정 상황에서 일격필살 혹은 대량학살을 위한 방식으로 사용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점프가 없다고 해도 공격 A버튼과 구르기 화살표 오른쪽 버튼이 떨어져 있어서 미묘하게 불편하다. 잡기 이후 레슬링 기술을 사용할 때도 wii 눈차크 패드와 리모컨 패드를 특정 방향으로 튕겨야 하는데 기술이 들어갔을 때 쾌감보다 뭔가 귀찮다는 느낌이 강하다. 잘 만들어진 전투 시스템에 억지로 wii 패드의 기능을 적용한 느낌이다. 튜토리얼이 끝나자 마자 게임큐브의 패드가 그리워졌다.
 막타 쳤을때 카지노 룰렛이 터지고 같은 아이콘이 나왔을 때 특수기술이 발동되는데 이 타이밍이 매우 미묘하다. 적 1,2명이 남았거나 적들이 멀리 떨어진 상황에서 터지면 뭔가 손해보는 느낌이 든다.

 이 게임은 킬러 배틀 파트와 일상(?)파트가 나누어져 있는데 일상 파트에서는 킬러 배틀에 참가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일상 파트에서 제공되는 트래비스의 바이크는 끝내주는 디자인이지만 정작 도시 자체는 공허하고 심심하다. 게다가 돈을 벌기 위해 참여해야 하는 암살미션, 아르바이트는 정말 반복적이고 재미없다. 게다가 체육관에서 능력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도 wii 패드를 움직여야 하는 부분에서는 짜증이 폭발했다. 게임이 가장 경계해야하는 것이 바로 게이머에게 일을 시키는 건데 이 일상파트가 그 전형을 보여준다.

 

 전체적인 동선 디자인도 매우 거지같다. 보통 미션을 실패하면 다시 재도전할 기회를 주는데 암살미션과 아르바이트 미션은 다시 NPC에게 가서 미션을 받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2007년 기준으로 생각해도 정말 상당히 짜증난다. 스테이지의 흐름도 깔끔하지 못한데 지하철을 통과하는 스테이지는 긴장의 유지나 시나리오면에서도 하등 쓸모가 없었다.

 

 다행히도 전투 파트는 재미있다. 몇몇 보스전들은 살떨리게 재미있었다. 게다가 사업팀 엑셀쟁이들 머릿속에서 절대 나올리 없는 미친 디자인과 정신나간 개소리를 듣는 재미는 충분하다. 문제는 그 과정까지 가는 과정이 매우 지루하고 불편하다는 점이다. 특히 wii로 발매된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wii 패드의 기능이 게임을 귀찮고 피곤하게 만든다. 굳이 동시대 기기중에 가장 사양이 떨어졌던 wii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여러모로 스다 고이치의 장단점을 보여주는 게임이다. 

 그래서 2편은 안 할 거냐고? 씨발 당연히 해야지 이히히히히히히 (헤븐스 스마일 처럼 웃으며)


 가끔 게임 디자이너의 아이디어가 의미없는 경우가 있다.
 게이머가 선택할 수 있는 두 주인공 레이 매콜과 토마스 매콜은 분명 다른 차이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FPS 게임의 주인공으로서 개성보다는 부족함이 느껴지며 그냥 합치면 되지 뭐하러 주인공을 두명으로 나누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결정적으로 게이머로서 내가 이 캐릭터를 꼭 해야하는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삼형제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흥미롭지만 게임 스테이지 디자인 자체가 2회차 플레이를 할 가치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토마스의 올가미 밧줄은 정말 쓸모가 없었다.

 

  군복무 시절 부대 중사는 나를 4차원이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내가 <헤일로> 시리즈의 팬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사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 인지 뭔지는 리니지였다.

 몇 년 전 게임잼(하루 혹은 이틀동안 게임을 개발하는 대회)에 참가하여 미술대학 강사와 한팀이 된적이 있었다. 그녀는 게임이 아닌 예술을 하러 온 사람이었고 모두가 반대하는 재미없는 아이디어를 제시하여 팀원들을 짜증나게 했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눈물을 흘리며 
 “나도 스타크래프트 정도는 해봤어요!”
 하고 소리치며 대회장을 뛰쳐나갔다.

 한번은 지인의 부탁으로 나이 많은 대학원생에게 비디오 게임에 대한 자문을 해준 적이 있었다. 평생 대학에서 공부만 해온 그녀는 질문이 아닌 지적을 했다. 디펜스 게임의 첫번째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는 빈정거리는 말투로
 “스테이지가 너무 짧은게 아닌가요?”
 하고 지적했다. 나는 똑같이 빈정거리는 말투로 대답했다.
 “튜토리얼이니까요”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정말 재미있어 보이는 게임을 봤다면서 나에게 유튜브로 한 게임의 홍보영상을 보여주었다. 리니지 라이크중 하나인 그 게임은 며칠 후 유저들의 외면을 받고 서비스를 종료했다.

 개인적으로 게임 안하는 사람에게는 게임 이야기를 잘 안한다. 잠깐 스쳐지나가듯이 게임을 플레이 해본 사람에게 최근 하는 게임이 <킬러7>을 다시 플레이했다고 하면 무슨 소린지 못알아듣는다. 이해한다. <리니지> 하는 아저씨라면 나를 한심한 놈으로 볼 것이다. 단순히 비디오 게임 힙스터로서의 오만함이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을 통한 결론이다. 게임을 하겠다는 자발적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 ‘게임’의 재미에 대해 설명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더 스탠리 패러블>은 게이머로서 특별한 게임이다. 나와 같은 게이머라면 이 게임을 시작한지 5분도 안되서 탄성을 내질렀을 것이다. 게임이 시작되고 내가 혹은 스탠리가 사무실을 나가면서 하는 모든 행동은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다. 나의 모든 행동에 대해 언급하는 내레이터의 대사는 섬뜩하기 까지 하다. 
 사장실에서 능청스럽게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내레이터의 대사는 게임이 주인공과 게이머가 분리된 메타픽션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사실 게임의 플레이는 주인공이 아닌 게이머의 시각에서 보여지는 정보를 토대로 진행된다. 스탠리로 대변되는 주인공의 그 자유의지는 게이머에게 있다. 하지만 그 게이머의 자유의지는 내레이터로 대변되는 개발자가 만든 시스템 안에 묶여있다. 하지만 그 자유의지에 대한 주도권과 범위가 달라짐에 따라 게임의 장르가 달라진다. 그리고 게이머가 그 주도권에 선을 넘으려고 하면 게임이 재미있어진다. <더 스탠리 패러블>의 다양한 엔딩처럼 말이다. 

 철저하게 내레이터의 말에 따르던 모든 명령을 거부하든 정답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엔딩을 찾아가는 여정은 마치 게임의 발전사를 따라가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스탠리 패러블>의 장르는 어드벤처가 아니다. 이 게임이 장르는 ‘게임’ 그 자체다.  <더 스탠리 패러블>은 비디오 게임을 사랑하는 게이머들을 위한 성찬이다.

 다양한 엔딩을 보기 위해 다양한 선택을 하고 맵을 탐색하는 과정이 충분한 재미를 보장하기 때문에  <더 스탠리 패러블>은 어드밴처 게임으로서도 가치가 있다. 사무실을 배경으로 한 현대인의 삶에 대한 은유로도 해석할 수 있으며 인생과 선택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스팀에 로그인 해본 적도 없으면서 게임의 스토리텔링을 논하는 강사들, 친한 형님 계정에 집행검 어쩌저쩌고 헛소리하는 얼치기 도박꾼들이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게이머를 위한 성찬이다. 이 게임을 재미있게 즐긴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나는 같은 게이머로서 그를 뜨겁게 포응할 것이다.

 질릴 정도로 이 게임을 즐긴 후 내가 게이머로 살아와서 다행이라고 느껴진다. 스탠리 반가웠어요. 내레이터 잘했어요. 말하는게 좀 재수없긴 했지만 그래도 고마워요. 이게 끝이 아니에요!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게임 속 최고의 무기는 무엇일까? 테트리스의 4X1 블록? *둠(DOOM)*의 BFG? 아니면 슈퍼마리오의 별?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게이머의 최고의 무기는 무엇일까?

 미미미 게임즈의 전작들을 너무 재미있게 플레이했던 유저로서, <섀도우 갬빗: 저주받은 크루>의 트레일러를 처음 봤을 때 숨이 막힐 뻔했다. 장르적 규칙을 충실히 구현한 게임 시스템에 ‘해적’이라는 한 방울의 컨셉이 더해지자, 완전히 새로운 게임이 되어버렸다.
잠입 실시간 전술이라는 장르와 저주받은 해적이라는 쿨한 컨셉이 만나는 순간, 또 하나의 명작이 탄생한 것이다.

 시스템 자체는 새롭지 않지만,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캐릭터 고유의 능력을 활용해 무모해 보이는 퍼즐을 해결하는 쾌감은 여전하다. 다만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선형적 구조가 아닌 캐릭터와 스테이지를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이 도입되며 서사에 대한 몰입감이 조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전작의 닌자와 사무라이, 혹은 서부극의 총잡이들이 보여준 복수극에는 ‘발단 – 전개 – 절정 – 위기’라는 극적 구조가 있었고, 그 여정을 통해 캐릭터들은 단순한 말(駒)이 아닌 이야기를 지닌 인물로 완성됐다. 하지만 이번 작에서는 선원 개개인의 매력은 충분했으나, 서사적으로 어우러지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 정말 개성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인데, 그들 사이의 소위 ‘투닥투닥 케미’가 잘 살아나지 않아 아쉬움이 컸다. 물론, 이는 이 게임의 사소하고 아주 사적인 단점일 뿐이다.

 중세, 대항해시대, 이단심문관, 해적, 저주, 오컬트... 이런 익숙한 요소들의 결합은 영화 <캐르비안의 해적>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지만 <섀도우 갬빗: 저주받은 크루>는 게임에서만 가능한 방식으로 전혀 다른 인상을 준다. 이 작품에는 게임이라는 매체에서만 표현할 수 있는 아주 흥미로운 설정이 있다. 인격을 가지고 있는 붉은 말리호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바로 게임의 세이브, 로드 시스템이 시나리오 설정상에서 한 인물의 고유한 능력으로 지정된 것이다.

 사실 세이브와 로드야말로 잠입 실시간 전술 게임의 알파요 오메가다.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유저는 한 스테이지에서 수십 번의 저장과 로드를 반복하게 된다. 이것이야 말로 게이머만이 가질 수 있는 필살기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다. 마지막 보스인 이단심문관 '이그나시아'조차 이 능력을 사용하는 장면은, 장르 팬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친다. 그녀가 시간을 되돌리지 못하도록 동시 공격해야 하는 마지막 스테이지는, 마치 코만도스에서 시작해서 데스페라도스를 거쳐 여기까지 온 게이머에게 보내는 마지막 시험과도 같은 강렬한 전율을 선사한다.

 정말 가슴 아픈 사실은, 이 게임을 마지막으로 미미미 게임즈가 해체되었다는 점이다.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매번 명작만을 만들어온 이 스튜디오가 더 이상 자신들의 후속작을 내지 못한다는 사실은, 게이머로서 너무도 큰 아쉬움을 남긴다. 언젠가, 그 제작진들이 다시 '로드'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응원한다.

 

 RPG 게임으로서만 보면 상당히 재미있게 즐겼다. 주인공도 매력적이고 세계관도 흥미롭다. 하지만 리듬액션에 가까운 전투는 살짝 지루하고 RPG게임으로서의 다양한 전략을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매우 부족하다. 게다가 전투, 아이템, 퀘스트 관련해서 인터페이스가 매우 불편하다. 2007년 당시 기준으로 생각해봐도 시스템 적으로 재미를 느끼다가도 튀어날 함정카드가 너무 많다.

 팬이 아니라면 굳이 추천하지 않는다.

 여러 매체에서 섹스를 보상으로 받는다는 것을 문제삼았지만 그게 뭐가 문제인가? 사실 가장 합리적인 보상 아닌가? 하여간 참 인생 피곤하게 사는것 같아

 

 

Mongrels : 잡종, 혼혈종

 

사실 코만도스 시리즈에 익숙하다면, 이 게임은 그리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같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코만도스의 외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차이점도 분명하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주인공이 독일군 탈영병이라는 점이며, 미국 중심이 아닌 유럽 각국의 인물들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한다. ‘잡종’이라는 제목처럼, 전장에서 버림받고 방황하던 이들이 하나로 뭉쳐 싸우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게임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매우 무겁고 우울하다. 특히 유대인 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스테이지에서는 그 우울함이 극대화된다. 한 캐릭터는 영웅적인 활약 끝에 죽음을 맞이하고, 유능했던 동료는 결국 배신하기에 이른다.

 엔딩에 이르러서는 주인공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물들이 죽거나, 사형당하거나, 행방이 묘연해진다. 미국으로 건너간 주인공에게 한 상담사(혹은 의사)로 보이는 인물이 그들의 이야기를 헐리우드에 보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지만, 그는 단지 처방전만 받고 말없이 거절한다.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거예요…”

 

 처음부터 끝까지 거칠고 우울하다. 승리의 환희가 아닌, 살아남은 자의 고독으로 끝맺는 이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달성감보다는 씁쓸함을 안겨준다. 그 감정이 이해가 간다는 측면에서 이 게임의 엔딩은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마블 스파이더맨 2는 게임으로서도 훌륭하다. 물론 반복되면 미션의 피곤함과 귀찮은 서브퀘스트들 (특히 스파이더맨의 정체성과 거의 상관없는) 미션들, 지루한 퍼즐들, 그렇게 하지 말라고했는데 또 집어넣은 잠입미션들에는 감점을 주고 싶지만 액션게임으로서는 만점이 아깝지 않는 재미를 주고 있다.

두 명의 주인공을 번갈아 조종하는 게임은 흐름이 깨지기 쉽다. 그러나 피터 파커와 마일스 모랄레스는 각각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조화로운 플레이를 제공한다. 마치 스테이크를 두 가지 소스에 번갈아 찍어 먹는 듯, 다른 풍미가 어우러져 새로운 즐거움을 만든다. 여기에 윙슈트가 더해져 도심을 날아다니는 속도감은 극대화된다. 슈퍼카를 수십 대 가진 GTA 주인공조차 스파이더맨을 부러워할 것이다.

 그렇다면 스파이더맨 원작을 가진 게임으로서는 어떨까? 마블영화가 부럽지 않는 원작을 존중하는 스토리와 연출, 그리고 흥미로운 변주를 보여주고 있었다. 크레이븐은  마블 영화 빌런들의 귀싸대기를 후려치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고, 베놈으로 각성하는 해리와 피터의 비극은 파이더맨의 팬이라면 전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베놈을 플레이하는 파트에서는 마블팬으로서 도파민이 폭발했다.

그러나 이 게임이 특별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바로 뉴욕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나는 뉴욕에 가본 적이 없다. 아마 평생 갈 기회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속 뉴욕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물론 단층 빌라에 사는 내 입장에서 화려한 마천루와 아름다운 공원을 보면 아주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단순히 모델링을 재탕하지 않고 전작보다 생감이 풍부해진 뉴욕시는 시작적으로도 매우 아름다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도시에 친절한 이웃이 살고 있다는 점이다.

 성공적인 스파이더맨 미디어믹스의 핵심은 웹스윙도, 스파이더 센서도 아닌 바로 친절한 이웃이라는 캐릭터성을 얼마나 잘 살리느냐에 있다. 특히 노숙자인 하워드에 대한 서브퀘스트는 화려하지도 않고 흥미진진하지도 않지만 그 수많은 액션들 사이에서 잊을 수 없는 여운을 안겨준다. 대도시에서 소외된 사람 옆자리에 않아 바다를 보여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려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친절한 이웃이기에 우리가 스파이더맨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 서브퀘스트야 말로 스파이더맨을 가장 잘 표현한 명장면이자 내가 이 게임에서 만난 뉴욕을 계속 그리워하는 이유였다.

 전작에서 스파이더맨은 가짜 스파이더맨에게 코스튬을 입어야만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을 남겼다. 꼭 뉴욕에 가지 않아도 코스튬을 입고 있지 않아도 내가 친절한 이웃이 되는 순간 내가 사는 빌라촌이 스파이더맨이 사는 뉴욕 어딘가가 될 것이다. 이 게임의 속편이 나와 트롤로지가 완성된다면 부제는 친절한 이웃이면 좋을 것 같다.



 사실 용과 같이 시리즈를 발매 순서대로 클리어해 온 팬의 입장에서, 이 게임의 배경이 특별하게 새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카부키쵸에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카무로쵸는 이제 어디에 무엇이 있고,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는지 훤히 꿰고 있으니까.

 탐정이라는 새로운 직업이 주인공에게 주어졌다고 해서, 플레이 방식에 신선함이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오히려 퇴보에 가깝다고 느꼈다. 잠입, 탐색, 사진 촬영은 모두 단순한 반복 작업에 가까웠고, 특히 미행 파트는 심각하게 지루했다. 미행이 시작될 때마다 게임패드를 들고 쌍욕을 했다.

 일반적인 액션 게임에서는 액션에 실패하면 게임오버가 되고, 경영 게임에서는 경영 실패가 곧 패배로 이어진다. 그러나 저지 아이즈에서는 추리가 틀려도 큰 문제가 없다. 그냥 다시 시도하면 그만이다. 결국 이 게임에서 탐정이라는 역할은 게임 플레이 측면에서 큰 의미를 주지 못했다.

 게다가 용과 같이 시리즈 특유의 자잘한 문제점들도 여전히 반복된다. 예를 들어 적진에 쳐들어가는 긴장감 넘치는 액션 파트 도중, 갑자기 열쇠 따기 같은 미션이 등장해 몰입을 방해한다. 편의성 면에서는 개선된 점도 있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면 이 게임을 플레이한 것을 후회하느냐고?
 전혀 아니다. 오히려 정말 최고였다.

 

 일부의 실패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 시리즈가 장점까지 버린 것은 아니었다. 기존 시리즈의 유흥 요소들은 줄었지만, 액션 게임으로서의 재미와 인상 깊은 캐릭터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무엇보다 기무라 타쿠야의 캐스팅은 신의 한 수였다. 말이 필요 없는 국민 배우가 용과 같이의 세계관에 들어오다니! 더욱 놀라운 건, 그는 '기무타쿠'가 아니라 진짜 탐정 '야가미 타카유키'로 보였다는 점이다.

 변호사, 탐정, 야쿠자라는 서로 다른 세 세계를 한데 묶은 스토리는 매우 흥미로웠다. 용과 같이 시리즈가 점점 늘어지는 서사 구조에 빠져 있을 무렵, 이 게임은 다시금 서사의 긴장감과 몰입감을 되살려주었다. 장편의 일본드라마와도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시나리오였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제작진이 기존의 상징적 캐릭터 '키류 카즈마'를 과감히 내려놓고, 완전히 새로운 등장인물들로 외전을 구성한 결정이었다. 사실 팬들은 또 한 번 야쿠자들의 이야기를 반복해도 충분히 신작을 구매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지 아이즈는 그런 안전한 선택을 버리고, 서스펜스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장르에 도전했고, 그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본다.

 버릴 것은 버리고, 새로울 것을 받아들이는 용기. 그 성공 여부를 떠나서, 이것이야말로 시리즈물을 제작하는 게임 디자이너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내 게임 인생의 전성기에 용과 같이 시리즈와 저지 아이즈 시리즈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게임 팬으로서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용과 같이 1편부터 이어지는 모든 후속작들은 여전히 충분히 플레이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도쿄 여행을 가고 싶지만 돈과 시간이 부족하다면, 아사히 맥주 한 캔과 닭꼬치를 곁들여 이 게임을 켜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는 도쿄를 잘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 게임 속에 구현된 도쿄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레벨이 오르고 나서는 맵 탐험 자체가 즐거웠다. 거리, 가정집, 심지어 화장실까지 ― 디테일하게 재현된 공간은 놀라울 정도로 생생했다. 특히, 사람 없이 텅 빈 거리가 만들어내는 한기는 다른 공포게임에서 느낄 수 없는 독특한 긴장감을 주었다. 시부야 사거리를 가로지르는 요괴들의 행진은 무섭고도 아름다웠다. 텐구를 이용해 높은 빌딩 위로 오를 수 있었지만, 주인공에게 완전히 자유로운 비행 스킬이 없다는 점은 끝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랬다면 더 자유롭게 이 도시를 누빌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의 도시전설과 요괴를 다룬 오컬트적 연출은 정말 뛰어났다. 몇몇 호러 연출은 모니터 앞에서 등을 서늘하게 만들었고, 학교 괴담을 다룬 서브퀘스트는 J-호러의 정석을 보여줬다. (특히 인체모형 이 개XX) 이 게임은 그야말로 도시전설 테마파크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만약 <공작왕>의 오기노 마코토가 플레이했다면, 발매 기념 축전을 그렸을지도 모른다.

 일본의 도시전설, 요괴를 다룬 오컬트적 요소와 연출도 매우 훌륭했다. 호러연출은 컴퓨터를 얼어붙게 만들며, 학교괴담을 다룬 서브퀘스트는 J호러의 정석을 보여준다. 게임 자체가 도시전설의 테마파크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아마 만화 <공작왕>의 작가 오기노 마코토가 이 게임을 해봤다면 바로 발매기념 축전을 그렸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게임의 플레이, 스토리가 단점과 하자 투성이라는 점이다. 기본 FPS적 구성을 뛰고 있는 게임 플레이는 매우 반복적이고 지루했다. 적들 역시 개성이 매우 부족하며 비슷비슷하다. 차라리 와패니즈가 환장하는 일본도를 넣어 주었으면 어땠을까? 사이드퀘스트 역시 반복적이고 지루하며 학교퀘스트를 제외하고 기억에 남는 강렬함도 없었다. 그저 경험치를 위한 지루한 노동에 불과했다. 메인 스토리도 뭔가 구멍이 많이 뚤려있는데 사이드 퀘스트가 메인 스토리와 연관성이 부족하니 둘다 몰입감을 떨어지게 하는 문제가 있다.

<고스트와이어: 도쿄>는 정말 예술이라고 할 만한 비주얼과 연출을 보여줬지만, 정작 게임성은 그 수준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더 아쉽다. 이 작품이 보여준 시각적 아름다운과 독창성이 속편에서 이어지지 못한다는 사실이, 끝내 씁쓸하게 남는다.


 개인적으로 게임이 가장 재미있어 지는 순간은 게이머의 성향에 따라서 다른 '과정'을 보여줄때라고 생각한다. 단순이 성향적 롤플레잉에 따른 굿엔딩, 배드엔딩 혹은 팩션엔딩과 같은 시나리오 루트의 결과가 아닌 목표를 클리어 해나가는 '과정'이 달라질때 게임은 다른 매체가 절대 보여줄 수 없는 게임만의 특징을 보여준다.

 어떤 게이머는 모하비 황부지에서 중화기로 무장한 배달부가 되어 황무지를 돌파하고, 또 다른 게이머는 높은 지능을 가진 배달부가 되어 협상으로 갈등을 풀며 같은 길을 걸어간다. 나이트 시티의 V도 마찬가지다. 산데비스탄을 장착하고 일본도를 든 V와, 높은 해킹 능력으로 적을 제압하는 V는 똑같은 목표를 향하지만, 전혀 다른 여정을 경험한다.

 이 차이는 영화나 소설 같은 다른 매체가 결코 재현할 수 없는 게임만의 고유한 특징이다. 바로 ‘결말’이 아니라 결말에 이르는 과정에서 게이머의 성향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나는 <비시즈>야말로 게임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겉으로는 단순하다. 주어진 목표물을 파괴하면 된다. 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은 무한하다. 누군가는 괴상한 괴물 같은 병기를 만들고, 누군가는 정교한 공학적 장치를 만든다. 결과물은 게이머의 창의력과 취향, 심지어 성격까지 반영한다. 병기 그 자체가 플레이어의 ‘자화상’이 되는 셈이다.

슈퍼 마리오가 ‘위대한 게임’이라면, 비시즈는 ‘가장 게임다운 게임’이다. 왜냐하면 게임은 결말이 아니라, 그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플레이어의 얼굴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약육강식’은 흔히 사이코패스들이 약자를 괴롭힐 때 내세우는 명분처럼 쓰이곤 한다. 그러나 실제 자연계에서 약자를 괴롭히는 행위는 쓸모없는 에너지 낭비에 불과하다. 자연에서는 강자와 약자 모두 각자의 고유한 역할이 있다. 역사 속에서 그 역할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하나로 규합되어 문명을 완성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담족과 이질라족의 몰락은 필연적이었다.
우담족은 식인 풍습과 난폭한 성향 때문에 다른 부족과의 화합이 불가능하다. 결국 스스로를 소모하다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다. 이질라족은 웬자족보다 더 발달한 문명을 가졌지만, 문제는 그 지성을 종교적 광신이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족장 바타리는 사람을 산 채로 태워 죽이는 의식을 집행하는데, 이런 체제가 더 발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반면 주인공 타카르는 웬자족을 규합하는 과정에서 곤경에 처한 자들을 구하고, 지식을 가진 적은 같은 부족의 식구를 받아들인다. 우담족의 족장 울은 철저하게 약육강식의 삶을 살았지만, 최후에는 아이들의 목숨을 구해달라며 타카르에게 자비를 구한다. 타카르는 울의 아이들을 웬자족의 새 식구로 받아들이며, 연민을 통해 부족의 힘을 확장한다. 이에 비해 이질라족의 바타리는 불 속에서 최후를 맞으며 인과응보의 결말을 보여준다.

 웬자족은 더 커지고 강해질 것이다. 이것은 약육강식의 결과가 아닌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한 규합의 결과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핵심은 연민이다. 약육강식을 실천한 아버지를 둔 우담족의 두 아이도 웬자족의 마을에서 타카르의 방식을 배우고 실천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문명이라고 부른다.

 <파 크라이 : 프라이멀>은 FPS로도 흥미진진한 경험을 선사한다. 제1차 세계대전의 병사와 현대전의 병사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싸우듯, 원시인 역시 고유한 전투 방식을 지닌다. FPS 장르는 시대와 배경에 맞는 전투 방식을 구현할 때 몰입감이 극대화된다. 이 게임은 몽둥이, 투창, 활, 그리고 야수 길들이기를 통해 원시시대 FPS라는 컨셉을 충실하게 구현하여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FPS 팬이라면 꼭 한번 경험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 시대를 체험한 사람들은 무릅을 탁 치며 즐겁게 플레이 할 수 있다. 이미 기반이 된 게임의 시스템과 완성도가 인정되었기 때문에 재미에 대한 걱정도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게임 플레이가 끝난 후 인상적인 장면이나 악역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파 크라이의 타이틀을 걸고 출시되었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전혀 파크라이스러움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약빨고 만든 게임이다. 하지만 항상 느끼지만 약빨고 본 환각은 오래가지 않는 법이다.


 나는 <데드 아일랜드 2>를 플레이하면서 이 게임의 배경이 가본 적도 없는 로스앤젤레스 였다는 점에서 어색하면서도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자본주의 엔터테인먼트의 끝판왕과 같은 비싼 공간에서 좀비를 사지를 전달하는 과정은 5성급 호텔에서 컵라면, 삼각김밥 세트 먹는 것만큼이나 어색했지만 오히려 그런 어울리지 않는 지점에서 강렬한 몰입감을 느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좀비를 보면 어떤 행동을 할까? 아마 인스타에 올릴 동영상을 찍을 것이다. 이 게임의 배경인 부촌, 촬영장, 호텔, 해변이 인스타에 찍어 올릴 훌륭한 소제가 되는 것과 동일한다. 부두교 신앙의 전설은 현대의 영화에서 다양한 갈등에 대한 은유이자 훌륭한 오락물의 테마가 되었다. 좀비로 가득 찬 로스엔젤레스! 인스타에 올릴 최고의 배경이 아닌가? 천사의 도시에서 좀비를 때려잡는 과정은 주인공에게는 생존이지만 게이머에게는 엔딩이 아쉬운 즐거운 오락이다.

 좀비 감염자들도 엄연한 피해자들이지만 이 상황에서 고인의 주검을 고이 모실 수 있는 여유는 없다. 그저 오락의 대상이 될 뿐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서브 퀘스트의 아만다 스타일스다 이 인플루언서 소녀는 이 상황에서 지지리도 말 안 듣고 주인공을 유튜브 조회수를 올릴 도구로 이용해 먹다가 끝까지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자기도 좀비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 퀘스트는 ‘재난마저도 콘텐츠가 되는 세상’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화려한 자본주의 사회와 좀비 사냥의 차이점은 그저 사지 절단을 하냐? 하지 않냐?의 차이다. 아마 좀비를 때려잡는 둔기와 흉기에 명품 메이커가 찍혀 있었다면 그 비극은 더 노골적으로 강조되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몇몇 괜찮은 NPC들이 더욱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것 같다. 처음에는 주인공과 갈등을 겪지만 오해를 풀고 조력자가 되어주는 여배우 엠마 전트, 대인공포증을 극복하고 자신의 우상인 엠마를 위해 세상으로 나서는 패튼, 의리를 똘똘뭉칭 매니저 마이클 등등 생각할수록 더 매력적인 인물들로 구성된 조연들은 팔다리가 난무하는 도시를 조금 더 살만하게 만들어 준다.

 만약 어제까지만 해도 평범하고 무고한 시민이었던 사람의 걸어다니는 주검을 날려버리는 영상이 내 인스타에 뜬다면 나는 좋아요를 누를까? 북마크를 누를까? 아니면 날아가는 건 내 팔다리일까, 혹은 당신의 팔다리일까?"

시민을 위해 봉사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보호하며, 법을 수호하는 경찰과 같이...

 

 1987년작 영화 <로보캅>은 명작이다. 반박시 니 말이 틀리다. 현대 사회에 대한 영원한 고민과 예리한 비판을 담아낸 이 작품은 그 진지함 너머에 강력한 오락성을 가지고 많은 팬들을 끌어모았다. 그 육중한 기계음과 함께 악당들을 처단하는 액션은 몇년이 지나도 대체 불가능한 상징이었다.

 

 사실  게임 <로보캅 : 로그 시티>를 명작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로보캅 캐릭터 자체의 특징은 액션게임으로 만들기에는 답답한 부분이 많다. 특히 점프를 하지 못해 돌아가야하는 불편함이 있다. FPS 게임에서 종종 일시작으로 강력한 슈트를 입고 싸우는 파트를 확장한 느낌이 (콜 오브 듀티 모던3의 마지막 미션) 들어 매우 답답하다. 특히 이 육중한 몸을 이끌고 도시를 순찰하며 서브퀘스트를 찾아 돌아다니는 부분은 매우 지루하다.

 

 하지만 로보캅이 주인공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모든 답답함이 당연히 구현해야하는 요소로 받아들여진다. 오히려 그 상황에서 로보캅을 플레이하면서 FPS 게임의 숙련도가 올라갈 때 팬으로서 어마어마한 쾌감을 준다. 특히 그 유명한 테마음악이 깔리면서 총격전을 벌이는 씬은 팬으로서 전율마저 느껴진다.

 

 메인 스토리는 물론 사이드 스토리 역시 훌륭하다. 영화 3편의 악몽을 잊게 해줄 만큼 훌륭하게 1편과 2편의 분위기, 주제의식을 자연스럽게 계승하고 있다. 시민을 위해 봉사하고, 무고한 사람을 보고하며, 법을 수호하는 로보캅이라는 한 인간을 정확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비공식 후속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영화팬으로서 게임팬으로서 후회없는 선택이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