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S 게임

<데드 스페이스> : 고어가 아닌 드라마

WONO.ONE 2012. 12. 13. 22:51

 

Twinkle, twinkle, little star,
 

 아이작 클라크는 2465년 지구의 미국 북동부 지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폴 클라크는 유명한 우주선 건축가였지만 가족 곁을 자주 비웠고 어머니 옥타비아 클라크는 그 스트레스로 한 종교에 의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종교에 집착하면서 자연히 아이작에게 소홀해졌고 힘든 유년기를 보낸다.

 어머니가 유니톨로지에 재산을 쏟아 부으면서 가세가 기울고 아이작은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기회를 잃는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다른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한 그는 상선 승무원으로 2년간 근무하고 대기업에도 취직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도 생기면서 그의 인생에 희망이 피어나게 되지만… 
 그의 연인 니콜 브래넌은 아이작의 권유로 아시무라 호 라는 플레닛 크렉 우주선에서 근무하게 되고 짧은 이별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작은 니콜이 보낸 구조 요청 영상을 받게 된다. 이시무라 호를 소유한 C.E.C에서는 즉각 구조대를 편성하고 아이작은 연인을 구하기 위해 이시무라 호로 가는 우주선에 몸을 싣는다. 그것이 그의 인생을 시궁창에 처박을 악몽의 시작이었다.

아이작 클라크 게임역사상 인생이 불쌍한 캐릭터 베스트5안에 들것 같다.

 

  게임 바이오 해저드가 공포게임의 대중화를 이끌면서 게이머들은 공포를 느끼기 위해 게임을 구입하는 새로운 악취미를 즐기기 시작했다. 우리가 원하는 흥미진진한 모험이 아닌 그 누구도 체험하고 싶지 않은 악몽을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게임은 몰입을 이끌어내기 때문에 재미있다. 즉 이 게임 <데드 스페이스>를 하면 우리는 악몽에 몰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악몽의 사일런트 힐 그리고 좀비들이 득실거리는 라쿤시티 이 도시 들 중 어디로 여행을 가고 싶냐는 짓굳은 농담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게임의 배경이 되는 이시무라 호는 그 두 가지 지옥도를 하나로 합쳐 놓은 듯한 공간이다. 게임 <데드 스페이스>의 시대배경은 태아를 ‘재배’해서 사고로 몸이 망가진 노동자의 몸을 바로 치료할 수 있는 극단적으로 과학이 발전된 미래다. 무신론은 대중적인 사상이 되었고, 종교는 의미가 없어 진지 오래다. 그 시대에서 활약하는 (혹은 활약했던) 이시무라 호는 행성을 갈아버려서 자원을 뽑아내는 최첨단 우주선이지만, 게임이 시작되면서 현실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현상과 교통사고로 엉망이 된 시체를 보는 듯한 네크로모프들이 득실거리는 아수라장이 된다. 실로 사일런트 힐과 라쿤시티를 결합한 훌륭한 SF버전의 지옥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시무라 호에서 네크로모프와 싸우면서 애인을 찾는 아이작의 하루가 보면 볼수록 끔찍한 이유는 이 게임이 높은 몰입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로 죽은 시체를 토대로 디자인된 적 '네크로모프'
저기 뒤에 보이는 것이 태아의 대량 인공 배양기, 이 세계관의 생명윤리관을 보여준다. 그리고 태아들은 괴물이 된다.

 게임은 현실을 디지털로 재현하면서 어느 정도 타협해야 할 필요가 있다. 폭한의 추위속에서 주인공이 벌벌 떨면서 걷지도 못한다던가, 총알 한방에 쇼크사한다면 그건 현실감이 아니라 짜증이 될 것이다. 현실 속에서 인간은 지도를 볼 수 도 없으며, 수십 개의 물품을 가방에 넣고 다닌다면 금방 지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에너지의 양을 볼 수 있는 게이지도 없다. 

 <데드 스페이스>는 게임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인터페이스를 세계관속의 일부로 활용하고 있다. RIG(Resource Integration Gear)는 게임 속 주인공의 복장의 척추 부분에 장착된 장치로 일종의 신체 보호복 겸 휴대용 소형 컴퓨터라고 할 수 있다. 26세기의 과학기술로 만들어진 이 장치는 사용자의 건강상태를 체크할 수 있으면서 영상을 송신하는 등 핸드폰 부럽지 않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 기계의 성능은 곧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가 원하는 정보를 제공해주며 시스템 상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RPG게임을 하면서 인벤토리창을 연다. 액션게임을 하면서 주머니에 있지도 않은 (받은 기억도 없는) 지도를 펴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다. 아니? 네비게이션도 없는데 어떻게 위치가 표시가 되지? 게임을 하면서 당연하지만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되는 상황이 <데드 스페이스>에서는 그 세계관에서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가 된다. 즉 플레이어로서 지도와 경로를 확인하는 것이 아닌, 이시무라 호를 탐색하는 엔지니어 아이작으로서 RIG를 통해 자신의 상황 그리고 경로와 위치를 체크하는 것이다. 게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필연적인 요소를 세계에 집어 넣으면서 이 세계의 존재에 대한 설득력을 불어넣어주는 것이다.

주인공의 복장과 무기에 이미 체력게이지와 잔탄량의 정보가 제공되어 있다.

 

 게임은 죽음을 기호화 한다. 하지만 <데드 스페이스>는 게임오버를 기호화 하지 않고 네크로모프에게 살해당하는 다양한 데드신으로 죽음을 실체화한다. 단순히 HP가 소모되어 캐릭터가 움직이지 못하고 게임오버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잔인한 신체절단을 통해 아이작이 어떻게 죽는지를 자세하게 보여준다. 이 실체화된 죽음은 게이머로 하여금 더 큰 공포를 느끼게 해주고 죽지 않게 몸부림 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공포는 일종의 죽음에 대한 페티쉬와 같다. 이는 인간이 섹스에 대해 가지는 호기심과 같다. 이유 없는 섹스는 포르노에 지나지 않지만, 인과관계를 가진 섹스는 멜로드라마가 된다. <데드 스페이스>는 죽음이라는 페티쉬에 SF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설정을 통해 인과관계를 배치하여 드라마를 만들게 된다. 이에 납득한 게이머는 살기위해 (데드신을 보지 않기 위해) 아이작이라는 인물에 몰입하여 플라즈마 커터를 쥐고 네크로모프와 맞서 싸우게 된다.  
 <데드 스페이스>의 세계관에서는 RIG를 포함에서 게임 속 악몽의 원인이 되는 레드마커와 블렉마커 그리고 그것들을 이용하여 음모를 꾸미는 유니톨로지, 행성을 통째로 채굴하는 무식한 기술인 플래닛 크랙이 환영 받는 정신 나간 미래 이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를 통해 소설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통한 미디어믹스를 통해 다양한 링크를 제공한다.
 공포영화 혹은 슬레쉬 고어 영화가 의미 없는 살육과 신체절단만 보여준다면 관객은 그 역겨움에 극장문을 나가거나 채널을 돌려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 잔인한 현상에 당위성이 있고 하나의 메세지가 담겨있다면 관객은 그 맥락을 읽기 위해 잔인한 악몽을 계속 감상하게 될 것이다. <데드 스페이스>는 고어를 통해 단순히 죽음에 대한 페티쉬를 만족시키는 게임이 아니다. 이 게임이 극한의 공포를 보여주면서 재미를 동시에 전달하는 이유는 탄탄한 설정과 스토리와 기발한 인터페이스가 강한 몰입감을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 지금 뭐하는 짓이야!
가까이 가면 저 남자는...

 

 잔인하고도 끔찍한 괴물들과 희생자들의 비명을 듣기 위해 왜 돈을 주고 이 게임을 하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왜 그 지옥도에서 갈기갈기 찢겨 죽어나가는 아이작의 죽음을 봐야 하는 것일까? 공포게임을 무섭지 않게 즐기는 방법은 의미가 없다. 공포를 체험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게이머는 <데드 스페이스>에서 아이작이 되어 이 지옥도를 마주하고 게임기를 끄기보다 문제를 해결하고 이야기를 마무리짓기 위해 몸부림치게 된다. 겨우 지옥을 탈출하는 순간 아이작은 마지막 남은 악몽에 공격당하고 이야기는 끝이난다. 
 <데드 스페이스>는 끔찍한 고어물이지만, 동시에 탄탄한 드라마다. 그 악몽속에서 나는 인류의 우울한 미래와 종교에 대한 믿음이 초래하는 비극과 마주한다. <데드 스페이스>는 새련된 인터페이스와 연출을 통해 비극에 대한 몰입을 제공하는 호러게임의 명작이다. 데드스페이스의 성공으로 인해 게이머들은 그 악몽에 저항한 하나의 경험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