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S 게임

<007 Everything or Nothing> : My name is Bond, James Bond

WONO.ONE 2013. 2. 18. 23:53

 

 

 게임 <007 GOLDENEYE> 이후로 더 많은 007의 프랜차이즈의 게임이 출시되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007 GOLDENEYE>가 원작의 재현보다는 게임성과 완성도로 큰 호평을 받았지만, 피어스 브로스넌 주연의 007 시리즈 영화를 원작으로 한 게임 <007 Tomorrow Never Dies>와 <007 The World is not Enough>는 구매 보다 대여를 고려하는 것이 좋다는 혹평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2004년도에 오리지널 스토리로 출시된 게임 <007: Everything or Nothing>은 모두에게 영화를 원작으로 한 게임에 대한 편견을 뒤집을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007 E.O.N>의 디스크를 콘솔에 넣고 전원버튼을 누르면 로딩이 끝나고 바로 게임이 시작된다. 단순한 오프닝 동영상이 아니다. 게임 스타트, 옵션 메뉴도 없다. 제3세계의 한 군사기지 한 남자가 몰래 숨어 저격총으로 거래현장을 보고 있다. 위험한 물건을 거래하는 두 집단이 물건을 주고받기 전 상관에서 명령을 들은 남자는 바로 폭탄을 폭파시키고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린다. 총을 들고 뛰쳐나온 이 남자는 바로 007 제임스 본드다! 중요한 물건을 회수한 그는 로캣런쳐로 적들의 해리어를 날려버리고 유유히 사라진다.

 

007 시리즈의 전통을 따른 게임의 도입부

 그리고 흐르는 테마음악과 007 특유의 오프닝 크레딧이 흘러나오면서 관객... 아니 게이머는 이것이 007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이 게임의 스토리만을 위한 주제가가 있다는 것이 놀랍다! 게임 <007 E.O.N>은 게임을 시작하는 순간에서부터 미션을 시작하여 원작영화와 유사한 흐름을 보여준다. 스토리텔링은 물론 Q와 M과 같은 전통적인 시리즈의 캐릭터의 등장에서부터 사용무기와 시스템까지 원작의 것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자동차, 바이크, 탱크 그리고 헬기까지 다양한 탈것이 등장하는 미션은 매우 흥미롭다. 헬기에서 떨어지는 히로인을 구하기 위해 절벽으로 다이빙을 하며는 미션은 흥미진진하다. ‘본드 모먼트’(영화처럼 멋지게 007다운 행동으로 액션을 취하는 것)를 달성하면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한다. 스파이더 로봇과 같은 특수장비를 통해 적을 제압하면 비밀요원으로서의 우월감마져 느껴진다.

 게임 <007 E.O.N>은 원작이 가진 아이콘, 심볼, 인덱스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매우 효과적으로 게임의 시스템에 배치한 게임이다. 이로서 원작의 팬을 만족시키는 것은 물론 같은 장르의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액션게임이 성립될 수 있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사실은 바로 <007> 시리즈 정확히 말하면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가 액션게임과 유사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형은 존나 레펠도 잘하고 사격도 잘하는 거다!
형은 오토바이 운전도 잘하는 거다!
형은 영국사람이라서 차도 존내 좋은거 타는 거다!
형은 가끔 탱크도 타는 거다!
형은 이상한 특수 무기도 쓰는 거다
형은 여자 구할라고 번지도 잘하는 거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씨는 자신의 책 ‘시네마 레터’에서 007 시리즈에 대해 인상적인 평을 했다. 이동진씨는 <007 네버다이>이 캐릭터를 ‘리얼리티 훼손과 인명경시로 얻어낸 알량한 유머’라고 평론했다. 이 문구가 중요한 이유는 영화평론가가 이런 대중적 작품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나는 평론가들은 무슨 칸영화제 수상작에 대해서만 쓰는 줄 알았다) 007 시리즈 천박함과 매력을 동시에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항상 007영화를 보면 대체 악당들은 이 많은 부하들을 어떤 돈으로 월급을 주고 관리하는 지 의문이 생기게 된다. 대부분 한몫 잡거나, 사상적 복수를 위해 음모를 꾸미는 악당들은 실패하면 이 모든 재정적 투자를 어떻게 회수할 것인가 생각은 하고 있는 것일까? (보험?) 그만큼 수많은 인명이 007에 의해 목숨이 날아간다. 영화속에서는 악당의 부하뿐만이 아니라 보통 군인들까지 그의 손에 목숨이 날아간다. 제임스 본드는 살인행위를 하면서도 간단한 농담을 던지면서 여유를 과시한다. 영화 <007 네버다이>에서는 윤전기에 적을 떨어뜨리고 인쇄되는 신문이 피로 물들자 “요즘은 별걸 다 인쇄하는 군”하는 대사를 날리고 <007 골드핑거>에서는 오드잡을 죽이고 “퓨즈나 나갔다”고 말한다. 모두 악당들이지만, 이 남자에게는 살인행위에 대한 그 어떤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피어스 브로스넌이 레밍턴 스틸에서 부터 가지고 있었던 능글맞은 느끼한 신사 이미지는 묘하게도 이 속성과 잘어울린다 물론 게임에서 그래픽으로 구현된 제임스 본드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게임 <007 E.O.N>속에서 반복되는 ‘본드 모먼트’는 주로 적을 살해하는 상황에 발동하는데, 억지로 적을 난간에서 밀어버리거나, 플레이의 자유도를 제한하는 등 미션을 클리어하기 위해서 전혀 필요 없거나, 억지스러운 조건을 내걸기도 한다. 이런 쓸모없는 리얼리티의 훼손은 살인과 농담을 통해 매력를 과시하는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의 속성과 일치한다.

 007이 정보 보안과 중요한 첩보원이라는 설정을 생각해보면 그의 명대사 “Bond, James Bond”가 튀어나오는 부분은 항상 실소가 터져 나온다. 정보기관의 요원인 그는 중요 인물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노출하여 신분위장을 해도 소용이 없다. <007 E.O.N>에서 제임스 본드가 비행기에서 내려 차를 타고 한 마을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이미 적들이 “본드가 왔다!”하고 소리친다. M16의 살인면허를 가진 스파이의 이름은 두목에서부터 말단 씨다바리까지 모두 알고 있는 것 같다. (한국 남자도 군대 다녀오면 통신보안은 안다.)

 ‘본드 걸’은 시리즈 대대로 본드와 섹스를 하지 못해 안달나 있다. 게임 <007 E.O.N>에서는 (안타깝게도) 이 부분이 노골적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물론 미션 중에 이런 성적인 코드를 보여주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The kiss kiss club’미션에서 총을 든 보안요원들이 지키고 있는 건물에 잠입하면 갑자기 뜬금없이 한 여자가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과 마주치게 된다. 본드는 그녀에게 마사지를 해주고 여자는 감동한다. (뭐야 이거...) 그리고 ‘본드 모먼트’가 달성된다. 

 

형은 마사지도 존내 잘하는 거다!

 

 사실 이동진씨가 지적한 007 시리즈가 가진 천박함은 액션게임의 재미와도 큰 연관이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게임 속에서 살인무기를 시각적으로는 좀 더 사실적으로 재현이 가능해졌지만, 사람이 죽는 모습은 아직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적들은 총을 맞으면 죽고 수류탄에 공격받으면 하늘로 날라 간다. 굳이 사실적인 것을 찾아본다면 총을 맞은 부위에서 피가 튀기고 쓰러지는 모습이 물리엔진으로 사실적으로 표현된다는 것뿐이다. 굳이 게이머는 이 안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한 시체를 보면서 죄책감에 대한 부담 없이 살인행위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여기에 남자들의 욕망을 구현한 BADASS캐릭터와 섹시한 히로인만 있으면 완벽하다. 영화 <007>시리즈의 아이콘, 심볼, 인덱스를 완벽하게 구현한 게임이 재미있는 것은 당연할 일인 것이다. 

 제임스 본드는 람보와 카사노바의 결합체라고 할 수 있는 다른 게임 속의 영웅 듀크 뉴켐과 본질적으로 같은 BADASS다. 단지 영국신사는 정장을 입었고, 해병대 예비역은 청바지에 나시티를 입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보물 찾으러 와서 수백 명 쏴 죽이는 <언차티드> 시리즈의 주인공살인마 네이선 드네이크는 성욕을 거세한 제임스 본드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다.  제임스 본드는 블록버스터 액션게임이라는 장르가 구현할 수 있는 남자의 욕망과 유사한 속성을 지닌 캐릭터다. 액션게임에 몰입한 게이머는 더 훌륭한 살인기계가 되면서 물리적 힘을 과시한다. 명분만 있다면 나는 학살자가 아닌 영웅이 된다. 마치 제임스 본드의 마구잡이식 성욕발산이 로맨스로 포장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여간 형은 존내 멋있고 강한거다!

 

  게임 <007 : Everything or Nothing>은 당시 가장 완벽한 007 게임이면서 시스템 자체만으로도 매우 독창적인 블록버스터였다. 이 게임은 무엇이 007을 매력적으로 만드는지를 말해주면서 무엇이 액션게임을 재미있게 만드는지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주는 게임이다. 그렇게 때문에 영화 역사상 가장 간지 나는 관등성명을 따라 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가 남자들의 욕망들이 매우 극단적인 형태로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게임이 블록버스터를 넘어 명작 혹은 걸작에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액션게임의 매력을 지키면서 제임스 본드라는 영국신사가 가진 ‘천박함’을 뛰어 넘기 위한 그 무언가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