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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페인 2 : 맥스 페인의 몰락> : 쌍권총을 든 음유시인의 비극

WONO.ONE 2012. 7. 14. 22:52

 

 

 “맙소사! 내가 사랑의 고민에 빠진 소녀가 되어 버린 것 같아”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 병원에서 비틀거리는 맥스 페인은 총을 장전하고 일어선다.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을 것 같다. 병원 복도에서 나의 발리키 모나의 환영이 보인다. 그것은 거짓이다. 하지만 맥스의 손에 죽은 발레리의 시체는 환영이 아니다. 그녀는 맥스 때문에 죽은 것이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

이번 작도 게임의 스토리상의 마지막에서 시작해 시간을 되돌려 진행된다.

 

 전편의 복수가 끝난 후 맥스 페인은 알프레드 우든의 입김으로 인해 영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난 시절의 악몽으로 그의 정신은 피폐해질 때로 피폐해진 상태였다. NYPD로 복직해서 살아가던 중 맥스는 블라드가 소유하고 있는 창고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다. 청소부로 위장해 창고를 습격한 괴한들은 맥스를 발견하자 그 창고에서 총기매매업을 하던 블라드의 애인을 죽이고 달아나 버린다. 그 과정에서 맥스는 머리에 총을 맞은 채 사라진 모나를 다시 만나게 된다. 물론 맥스를 보자마자 사라져 버리지만…

병실에 그려진 아이들의 그림, 이 그림들은 전편의 맥스 페인의 인생을 묘사하고 있었다.

 

 맥스 페인의 속편은 게임을 리뷰하는 시선에서는 그리 호의적인 게임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전편에 대한 완곡한 복제품으로서의 가치는 인정받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속편은 충분히 존중받을 가치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전편의 스토리텔링의 기법과 환상속에서 괴로워 하는 맥스 페인의 방황, 이 묘사는 몰입과 긴장을 팽팽하게 유지시켜준다. 게임 초반부에 등장하여 그의 혼란을 대변하는 듯 한 모나의 은신처인 유령의 집의 레벨 디자인은 환상적이다. 게임속의 그래픽우로 구축된 유령의 집에서 조잡한 종이모형과 유치한 특수효과는 플레이어들의 놀이터인 게임 그 속에 또 하나의 놀이터를 만들어 놓았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그 놀이터가 적의 습격으로 무너질 때 또 하나의 스테이지로서 면모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가장 큰 몰입을 이끄는 요소는 전편에 이어지는 맥스 페인이라는 인물의 고통과 고난, 즉 스토리 속에 자리잡은 비극이라는 문학적 요소가 아닐 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나의 은신처, 그 안은 정말 후덜덜한 디자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게임의 스토리를 논하는 방법 중 하나는 우선 그 스토리가 디지털이라는 매체를 통해 어떤 인터렉티브 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방법이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을 떠나 문학이라는 본질에서 게임의 스토리텔링을 살펴보면 어떤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을까? 

 <맥스 페인2 : 맥스 페인의 몰락>의 스토리는 곧 비극에 대한 이야기다. 초반부부터 혼란에 빠진 그의 모습을 보면 이번에도 그의 고난은, 인생의 아름다움에 대해 논해줄 것 같이 않았다. 게임의 속편이 출시된다는 것은 곧 그 주인공에게 다시 싸워야 할 이유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흔히 다른 게임에서 동기부여로 설명되는 이 부분이 맥스 페인에게 그것은 또 다른 비극으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왜 인간은 비극을 돈을 주고 즐기는 것일까? <맥스 페인2 : 맥스 페인의 몰락>과 같은 선형적 게임 속에서 비극을 베이스로 스토리를 진행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는 일이다.

 맥스 페인은 1편부터 비극적인 테이스트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항상 유머를 잊지 않았다. 전편에서 맥스는 프렝키 나이아가라에게 이름을 빈정거리는 농담을 던졌다가 야구방망이로 무자비하게 구타 당한다.

아니 도대체 이건 뭐하자는 시츄에이션이야?

 

 전편에 이어 등장한 비니 가그니티는 만화캐릭터를 쓰고 우스꽝스러운 꼴이 된 체로 허둥대다가, 맥스에게 보호를 요청한다. 바보 같은 꼴을 하고 있는 그의 집에서 그가 모아 놓은 만화 캐릭터의 콜렉션을 건드리면 욕설이 날라온다. 결국 뒤뚱거리며 위험지역을 빠져나가지만 옷에 숨겨진 폭탄에 폭사하고 만다. 맥스의 시니컬한 농담과 부조리한 상황들은 이 이야기의 비극을 더욱 강조하는 효과를 보여준다.

 비선형 스토리텔링에서 게이머가 게임에 몰입하는 것은 곳 주인공에게 공감하게 되는 과정과도 같다. 여기서 비극은 그 공감의 촉진제와도 같은 것이다. 비극이 없으면, 총알을 당겨야 하는 이유도 없다. 행복한 인물에게 플레이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시기와 질투 뿐이다. 하지만 비극 속에서 발거둥 치는 주인공에게 플레이어는 연민과 동정을 느끼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부조리를 박살내기 위해 같이 싸우는 것이며, 설사 그것이 친구가 배신하고 조력자는 죽고 사랑을 잃게 되는 비극으로 치닫는다고 할지라도 괜찮다. 같이 싸워온 플레이어는 맥스 페인이 얼마나 열심히 싸웠는지는 공감하기 때문이다.

전편에 등장한 블라디미스 렘 갱영화를 흉내내는 웃기는 녀석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권력의 맛을 알아버린 그는 우정을 배신한다.

 

 전편의 조력자 블라디미르 렘은 갱영화를 따라 하는 어설픈 러시아 갱단의 두목이었다. 검은 비니모자에 뒷골목 양아치 같은 옷을 입고 나와 맥스 페인 앞에서 어설픈 말론 브란도 흉내를 내던 나름 의리를 지키던 양아치였다. 하지만 이번엔 그가 입고 나온 흰색 정장은 그의 내면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는 의리보다 권력을 위해 음모를 꾸미는 새로운 악역이 되어 있던 것이다.

 맥스 페인을 영웅으로 만들었던 알프레드 우든은 사실 그의 가족이 죽게 만든 원흉이었다. 결국 블라드의 배신으로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우든은 자책감에 그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지만 그렇다고 맥스의 비극이 씻겨나갈 수 있을 것인가?

죽기전에 하는 마지막 사과 그것이 무엇을 보상해준단 말인가?
방탄 유리 넘어서 독설을 날리는 블라디미르 렘 씹세

 

 우든의 저택에서 총격전을 벌이면서 우든은 죽고 모나는 총격을 당했다. 블라디미르 렘은 방탄유리 넘어 비극 속에 몸부림 치는 그를 향해 독설을 날린다. 

 "뭐 하자는거냐, 맥스! 왜 그냥 뒈져버리지 않아! 넌 삶을 증오하잖아! 네놈의 인생은 티끌만큼이라도 즐거워 지는게 두려워서 언제나 비참할 뿐이잖나! 네놈은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는걸 왜 몰라! 니 멋대로 해라! 포기해!"

 이 말은 틀린 말이다. 맥스 페인의 인생이 고통으로 가득 찬 것은 옳지만, 그렇다고 그는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즐거워 지는게 두려운게 아니라, 비극이 두렵지 않은 것이다. 플레이어가 게임오버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이상 그는 다시 일어서서 이야기의 끝으로 다가갈 것이다.

 맥스는 결국 블라디미르를 죽였다. 게임의 마지막 최고 난이도의 엔딩에서 사망한 모나가 맥스의 키스로 살아나는 엔딩은 이 게임에 어울리지 않다. 맥스 페인은 친구를 포함에서 모든 것을 잃어야 한다.

 이 생각이 게임 속 캐릭터에 대한 하나의 가학적인 상상력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이 일말의 희망도 없는 비극적인 인생이, 비선형 스토리텔링의 가장 큰 몰입감을 이끌어 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가혹한 것도 아니다. 애초에 맥스 페인은 이 비열한 거리를 지나가야 할 운명이었다. 더 나아지지 않더라도, 또 모든 것을 잃고 몰락한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주저하지 않기 때문에 맥스 패인은 정말 위대한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맥스 페인은 몰락했다. 하지만 쌍권총을 등 음유시인의 비극은 허무하고 속절 없는 것이 아니다. 그와 함께 방아쇠를 당겨온 우리들은 알 수 있다. 그가 인생의 고통과 고난과 맞서 싸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말이다. 

과연 이 해피앤딩이 그에게 어울리는 앤딩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