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차티드>시리즈는 스토리가 그렇게 탄탄한 게임은 아니다. 주인공 네이션 드레이크는 (약칭 네이트) 군인이자 해적이자 모험가인 프란시스 드래이크의 후손으로 조상과 마르코 폴로가 남긴 단서를 토대로 보물을 찾아 생사를 넘나드는 모험을 떠나게 된다. (알테어의 후손이 아니었나?) 존스박사 같은 전형적인 어드밴처의 주인공이다. 그렇게 특별한 매력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이 게임은 미치도록 재미있는 것일까??
만약 여러분이 영화 한편을 봤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아주 탄탄한 스토리의 영화를 한 편 봤다. 텍스트도 풍부하고 스토리도 참 좋았다. 이 영화는 당신의 기억 속에 재미있는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봤다면? 같이 있으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이성과 이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해어졌다. 영화가 기억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그 사람과 같이 있었던 그 순간이 기억에 남을 것인가? 물론 시청의 경험보다, 체험의 경험이 당신의 기억 속에 더욱 깊이 자리잡을 것이다. 그것이 이 게임이 당신의 기억에 남은 혹은 기억에 남을 이유기기도 하다.
1편은 어드벤처라고 하기엔 TPS에 가까운 게임이었다. 그래픽만 좋은 평작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2편에서 환골탈태한 이 게임은 그래픽도 좋은 완벽한 균형의 어드벤처로 탄생했다.
게임기를 켠김에 왕까지 가기 좋은 이 게임이 상당한 몰입을 자랑하는 이유는 물론 그래픽이 좋다는 것도 빼놓을 수는 없지만 우선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진행을 예로 들 수 있다.
게임에서 몰입을 방해하는 요인은 안타깝게도 게임 그 자체에 있다. 지나치게 도식화된 구조 혹은 영화적 연출이라는 미명하에 동영상으로 몰입의 흐름을 방해하는 연출방식, 이것은 플레이 중간 중간에 게이머에게 이것이 현실이 아닌 게임임을 가르쳐주는데 이런 당연한 것을 가르쳐줌으로서 게이머를 중심이 아닌 방관자로 만들어버린다. 이들은 게임을 제작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도 그 기술을 실현시키는 문화적 기반은 오래된 것에 머물러있었다.
반면 <언차티드2>는 게이머를 방관자 혹은 조종자가 아닌 게임의 중심에 선 체험자로 격상시킨다. 네이트의 행동은 아주 생동감 있게 묘사되고 있었다. 잠입과 총격전 그리고 수수께끼까지 완벽한 밸런스로 짜여진 전체적인 흐름은 질리지 않는 완벽한 대리체험을 보여준다. 영상과 플레이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힌트를 얻기 위해 수첩을 열면 화면에 수첩이 펴지면서 내가 그 세계 속에서 체험을 하고 있다는 몰입감
을 유지시켜 준다.
<언차티드2>는 플롯의 구조를 생각해보면 스토리는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다. 캐릭터들도 크게 개성적인 인물들은 없고 그렇게 특별한 복선이나 모티베이션도 찾아볼 수가 없다. 하지만 유저친화적이며 현실감을 높이는 인터페이스는 게임의 스토리텔링의 본질을 말해준다.
게임의 스토리텔링은 플롯의 점검사항을 따져가며 복선과 모티베이션을 통한 훌륭한 시나리오를 쓴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있으면 좋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이야기가 아닌 어떻게 이야기를 하느냐에 있다. 게임의 대리체험이라는 재미를 위해서 주인공의 얼굴이나 생각을 제거하는 것도 있지만(몇몇 FPS게임) 이것이 게임이라는 기호를 최대한으로 제한하고 사건의 방관자가 아닌 경험자로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니 이 이야기는 내가 이끌어나가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다리가 무너지고 도시가 무너지는 스펙타클은 이 경험을 더더욱 찰지게 해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언차티드2>의 스토리는 형편없다. 하지만 정신 없는 전투와 모험을 ‘체험’하게 되는 이 게임은 스토리 없이도 훌륭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이 게임은 비디오게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며 대리체험이라는 게임의 본질을 보여준 걸작이다.
하지만 사실 이 게임을 다시 돌아보면 참 무섭고 잔인한 게임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이 사람을 죽여온 상황은 정당방위라고 해도 민간인을 건물 밑으로 던져버린 적도 있다. 2편의 마지막 보스가 넌 오늘 몇 명을 죽였냐고 따지자 게임을 해온 나도 할 말이 없었다. 게임이 죽음을 기호화 할 때 그 형태가 간단할수록 죽음에 대한 감정적인 충격이 줄어드는데, <언차티드>는 신체절단이나 피철갑을 제외하고 비교적 간단하게 죽음을 묘사한다. 모험에 열중하면서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살인이라는 것까지 잊게 만들고 마지막 보스의 대사를 통해 오늘 내가 몇 번의 살인을 경험했는지 생각해보면 조금 후덜덜한 생각도 든다. <갓 오브 워>의 살인은 내 스스로가 인식하고 있었지만 <언차티드>는 이것이 살인이라는 인식조차 들지 않는다. 원래 액션게임에 등장하는 피래미들의 운명은 가벼운 것이지만 이런 대량학살을 눈 깜짝 하지 않고 해치운 네이트도 참 무서운 도굴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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