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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d Theif Auto : San Andreas> : 제복을 입은 악인

WONO.ONE 2012. 10. 1. 00:02

 

스포일러 있으니까 꼬우면 읽지 말던가!

 

 칼 존슨은 (이하 CJ) 5년 전 동생 브라이언이 조직간의 항쟁에 말려 죽은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도망가다시피 리버티 시티로 떠난다. 그 후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비보를 듣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공항에서 짐을 찾고 택시를 탄 CJ는 자신의 집으로 향하지만, 그의 귀향은 순탄하게 흘러나가지 못했다.

 위협적인 콧날, 야비하게 생긴 콧수염, 재수없는 말투... 그가 검튼의 거리에 돌아와 가장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악덕 경관 프랭크 템페니였다. 그는 억지스럽게 CJ를 택시에서 끌어내고 그의 돈을 강탈한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살인 누명까지 씌운다.

고향으로 돌아온 CJ는 자신의 조직을 재건하려고 하지만 동네는 개판이 되었고 동료들은 배신해 친형 스위트는 감옥에 수감된다. 그리고 악덕 경관 템페니는 그에게 자신의 비리와 불법행위를 위한 더러운 일들을 강요하기 시작한다.

사무엘 L. 잭슨이 성우를 담당한 프랭크 템페니
주인공 칼 존슨(CJ), 성우는 LA 출신의 래퍼 영 말레이(Young Maylay)

 

 어설프게 만들어진 쌍카플과 툭 튀어나온 눈알, 건장한 체구, 그리고 양아치 어조... 군복무시절 자대배치를 받고 GOP에 올라가 GOP를 관리하는 B중사를 처음 본 나는 본능적으로 그가 양아치 깡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몇 번의 대화를 통해 나는 그 예감이 적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GOP에 혼자 있는 부사관이 할 수 있는 것은 다양했다. 족구, 낮잠 판타지 소설 탐독, 티비시청, 야식먹기 등등 그를 보면서 나는 군대에서 어떻게 세금이 낭비되는 지를 알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짜증났던 것은 이 인간의 개인적인 유희를 위해 나의 시간이 날라가는 것이었는데, 족구경기가 보고 싶다고, 이 인간이 파라솔 밑에서 쉬는 동안에 태양 아래서 족구를 해야 했고, (무슨 족구 자세 잡아준데나 뭐레나) 어느 날은 삽을 들고 산에 있는 칡을 캐야 했다. 쨈을 만든다면서 산속의 오디를 구하려고 판초우의를 깔고 나무를 흔들었으며, 잣나무의 열매를 따기 위해 길다란 철봉을 휘둘렀다. 물론 대부분의 결과물은 그의 소유물이었다. 나의 개인정비 시간의 대부분은 이 B중사의 개인적인 일을 위해 쓰여졌다. 
 그는 전형적인 제복의 권력자였으며, 자신의 의무를 지키며 살아가기 보다. 권력을 남용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개 같은 군간부 중 하나였다.

 게임 <GTA : 산안드레스>의 치밀한 스토리라인은 마치 90년대 갱스터 영화에 들어간 느낌을 준다. 다양한 즐길꺼리와 육해공을 넘나드는 스토리, 개성넘치는 조연들(그리고 탄탄한 성우 캐스팅) 4편이 출시 되기 전까지 GTA시리즈에서 살아있었던 조금은 약빤 분위기도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이 게임의 만악의 근원 템페니 경관이였다.

 나는 이 악역을 보면서 내가 군 복무시절 가장 오랜 시간을 보게 된 군 간부 B중사를 떠올렸다. B중사는 나에게 살인을 교사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템페니와 많은 구석이 닮은 인간 말종이었다. 병사출신 간부였던 그는 일종의 내무 부조리의 알파요 오메가였던 인물로 병사들에게 서류상으로 금지된 모든 내무 부조리를 걸리지 않을 정도의 수위를 조절하면서 마음 것 행사하고 있었다.

 로스 산토스의 경찰로 폭력단 범죄과 C.R.A.S.H(Community Resources Against Street Hoodlums)에 소속된 템패니는 범죄조직의 뒤를 봐주거나 협박하고 돈을 받고 여자 따먹고 마약하는게 일상인 경관이다. 살해한 동료의 살인용의를 CJ에게 씌우고 그를 이용하여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도록 시킨다. 자신의 부정을 증언할 증인을 살해하거나 기자와 FBI에게서 증거자료를 빼앗게 하는 일이다.

그는 CJ가 일을 잘 처리해도 그를 같은 배를 탄 동료로는 생각해주지 않는다. 자신 바로 밑에서 부패의 단물을 같이 빨아먹는 동료 경관들까지 쓰고 버리는 장기말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Misappropriation미션에서 CJ가 농담하듯이

“이건 어때, 이 씹창 새끼야? 그게 내가 얼마나 기분 날카로운지 표현이 되냐?”

 

“조금 기분들이 날카로운가 보네, 친구들?” 
이라며 농담을 던지자 CJ의 배를 한방 날리면서 
“이건 어때, 이 씹창 새끼야? 그게 내가 얼마나 기분 날카로운지 표현이 되냐?”
 하고 받아 친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B중사가 떠올랐다. 그 역시 가끔 내가 아부를 치려고 해도 자기가 기분이 나쁘면 아무 소용 없었으며 쌍욕이 날라왔다. 마치 병사를 아끼는 척 하지만 결국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이익이었다. 병사를 아끼는 간부였다면 애초에 자신의 유희를 위해 병사들의 자는 시간 까지 강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러모로 B중사는 탬페니와 닮은 꼴이었으며, 탬페니는 B중사의 하드코어 버전이었다.

 한가지 더 큰 공통점은 탬페니 경관과 B중사는 모두 제복을 입은 악역이라는 점이다. 제복을 입은 악역이 현실에서 더 공포스러운 점은 그 스스로 악을 단속해야 하는 존재가 악을 저지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병사들의 내무 부조리를 단속해야 할 의무를 가진 부사관이 압장서서 내무부조리를 실천하고 도시의 범죄를 단속해야 할 경찰이 범죄 행위에 압장서 있다는 점은 매우 정말 오싹한 현실이다. 경찰의 반대에서 범죄 자체를 소제로 한 GTA시리즈에서 경찰이 악역이라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CJ와 같은 영웅은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나의 군대시절의 악역인 B중사의 대항하기 위해 내가 스스로 CJ가 되었다면 나는 그저 내부고발자로서 영창으로 향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See you around, officer

 

 그의 악행이 밝혀 지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되지 않자 마을에 대규모 폭동이 일어난다. 자신의 모든 악행을 알고 있는 CJ를 살해하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템패니는 소방차를 타고 도주하고 게임의 마지막 추격전이 벌어진다. 결국 CJ는 허무하게도 다리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고 사망한다. 그리고 CJ는 그의 시체를 비웃고는 집으로 돌아간다. 

 "나중에 다시 만납시다, 경관님"(See you around, officer)

 얼마 전 참가한 예비군 훈련장에서 나는 같은 부대에 있던 전역한 하사를 만났다. 탬페니와는 다르게 B중사는 분노한 병사들에게 총에 맞거나 군사기밀을 들고 북으로 도망가려다가 지뢰를 밟는 짓거리는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는 상사로 진급하여 지금도 잘 먹고 잘 산다고 들었다 그는 템페니와는 다르게 프로였기 때문에 자신의 내무부조리와 병사들에게 가해지는 치사한 약탈행위를 들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임 후반부에 벌어진 폭동이 사실은 LA 폭동을 오마쥬 했다는 것은 참 의미심장하다. 실제 사건의 가해자인 경찰들은 백인들이지만, 제복을 입고 규칙을 지키고 수호 해야 하는 자들이 그 의무를 져버리고 사회 정의의 선을 넘어버린 것은 게임과 동일하다. 산안드레아스의 시스템 속에서 경찰은 방해꾼이자 단계적 장애물이지만 스토리 속에서는 진정한 범죄와 폭동의 근원이었다. 

 템페니 경관은 나의 인생에서 가장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악몽 같은 지점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해주었다. 지금 우리가 가까이 있는 곳에서 템페니 경관 같은 제복을 입은 악역은 분명 존재하고 있다.

 게임 속에 악역은 인생을 마주치는 악역에 대한 은유다. 템페니 경관은 군생활 내내 나를 괴롭혔던 B중사의 은유였다. 게임 속에서 그들은 결고 제3자가 아니다. 불행하게도 현실 속에서 나는 CJ가 될 수 없었다. 게임 속에서 악역이 필요한 이유는 인간쓰레기를 심판할 수 있는 대중문화로서의 대리만족을 위해서지만, 다른 의미에서 악역이 득세하는 비극을 대리체험하기 위함이다. 

 이 일게 경관은 그 어떤 괴물, 유령, 악신과 마왕보다 무서운 존재다. 이런 일은 가상이 아닌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