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S 게임

<007 From Russia With Love> : From Russia With Nothing

WONO.ONE 2013. 2. 19. 22:52

 

 

 <007 From Russia With Love>은 한국에서 <007 위기일발>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된 1963년의 동명의 007 시리즈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게임이다. 원작영화는 007 시리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었다. 게다가 숀 코네리 옹께서 직접 성우로 참여하셨으며, <007 : Everything or Nothing>의 시스템을 그대로 계승했으니, 개인적으로는 매우 기대하고 있던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007영화

 

 영국 빅벤 앞에서 열린 파티 한 무리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들이 파티에 몰래 숨어든다. 지나가는 헬기가 살짝 시대고증과 맞지 않다는 느낌이 들지만, 우선 넘어가자. 그리고 나타난 우리의 숀 아니 본드횽아! 바텐더에게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 주문한다. 오오 본드형! 얼굴 그래픽은 합격이다. 파티장에는 총리따님이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때! 나쁜놈들이 파티장을 습격 여자를 납치하고 건방지게 “게임은 끝났다!” 하고 소리친다. 이에 본드횽은 “아니 이제 시작이지!” 하며 게이머들에게 게임의 시작을 알린다.

 월터PPK로 적들을 발라버리신 본드 횽아는 건물로 인질범을 추적한다. 오오!! 미녀를 구하기 위해 본드횽아는 제트팩을 탈취하고 빅밴으로 올라가신다. 미사일도 빵빵 쏘신다! 잠깐... 저 제트팩은 <007 썬더볼 작전>에 사용되었던 물건이 아닌가? 왜 여기 나오지? 영국신사의 필수품인가? 그런데 적들도 같이 쓴다. 하여간 간지 나게 추락하는 헬기 사이로 들어가 여자를 구하신 본드횽, 여자에게 간지 나게 자신의 관등성명을 말하시고 (Bond, James Bond) 빅밴 저 너머로 날아가신다. 그리고 오프닝 크레딧이 흐르고 벨리댄스를 추는 여자 오프닝 크레딧이 흐른다. 와 멋지다!! 이것이 007이다!! 우선 대충 여기까지는 합격점이다.

아닛!
슉!
누구시죠? // 제 이름은 본드 김본듭니다.

 

 <007 F.R.W.L>는 원작을 가진 게임으로서, 그리고 액션게임으로서 그럭저럭 합격점을 줄 수 있는 게임이지만, 게임을 구축하는 아이디어에서 묘한 아쉬움을 느끼게 해준다. 게이머는 60년대의 MI6의 본부에서 M을 만나게 되고 Q의 연구실에서 특수장비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오프닝 크레딧 후 스펙터가 007 암살을 위해 만든 가짜 제임스 본드가 등장한다. 임무를 위해 이스탄블로 간 제임스 본드가 MI6의 이스탄불 지부장 케림 베이와 집시 켐프에서 가는 장면은 원작영화와 매우 흡사하다. 두 집시 여인이 남자를 두고 싸우는 장면에서 테터리스트들의 습격이 시작되는 장면은 매우 자연스럽다.

 그렇다고 해서 이 게임이 원작의 모든 것을 그래도 옮겨 온 것은 아니다. <007 F.R.W.L>는 액션게임으로서의 갈등을 만들기 위해 원작에는 없었던 장면을 추가했다. 적들에 의해 MI6의 이스탄불 지부가 습격당하고 (원작영화에서는 폭탄테러), 케림 베이 이스탄불 지부장과 지하를 통해 적들을 염탐하러 가는 장면에서도 엄청난 적이 습격한다. 본드와 케림베이가 집시마을에 있었을 때 그들을 습격한 테러리스트를 조립식 저격총으로 살해는 유명한 장면에서도 (“저 여자가 입을 열어서 죽었군”) 원작에서는 없었던 엄청난 적들이 습격한다. 원작영화를 본 사람으로서는 이 모든 장면이 자연스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영화 속에 묘사된 두 집시 여인의 싸움
게임 속에 묘사된 두 집시 여인의 싸움
원작의 느낌을 살린 집시캠프에서의 전투장면
원작에서는 테러리스트가 저 구멍으로 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것을 저격한다.

 

 동시에 1960년대라고는 믿을 수 없는 오버 테크놀러지가 난무한다. 게임 초반에 등장했던 제트팩은 그 후 미션에서 몇 번 더 등장하는데, 본드도, 지나가는 적병1도 모두 사용한다. 제트팩 타고 이리 저리 날라 다니면서 미사일 쏘는 모습이 조금 촐싹대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적들이 MI6이스탄불 지부를 습격하는 미션에서는 60년대에 제임스 본드가 원격조정으로 움직이는 소형헬기를 꺼내신다. 환풍구로 이 헬기를 집어넣어 경비시스템을 폭파시키는 건 멋지지만, 60년대에 이런 오버테크놀러지라니... 진정한 외계인고문을 하는 나라는 독일이 아닌 영국이었던 것인가? 아니면 Q가 랩처라도 다녀오신 것인가? 물론 이전의 007 영화의 특수무기들이 오버 테크놀러지 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게임은 60년대라는 원작의 배경과 너무 빗나간 무기들을 설정함으로서 신기함을 넘어 허무맹랑함을 느끼게 해준다.

 

개나 소나 다 타는 제트팩
어이 60년대에 이게 어울리나?
60년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섹시컨셉
그냥 나와서 싸워 이 미친놈아!

 

  스펙터의 암살자, 그렌트와 열차에서 벌어지는 격투전은 단순한 총격전으로 그려진다. 원작에서 제임스 본드가 숨겨진 금화 50개로 흥정을 하다가 최루가스에 역공당하고 칼에 찔려 죽는 장면은 QTE액션으로도 흥미진진하게 재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게임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원작의 하이라이트같은 액션신이 단순하게 각색된 것은 너무 아쉽다. 당시 시대와 전혀 안어울리는 전신에 라텍스 제질 같은 옷을 입은 여자 암살자의 오리지널 캐릭터는 덤이다.

 스펙터의 넘버3, 무서운 할매 로자 크랩이 007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하는 장면은 원작에 충실하게 재현되었다. 하지만 그 후 앤딩이 아닌 원작에 없었던 마지막 스테이지로 진행된다. 낙하산을 타고 적 기지에 잠입한 본드횽아는 여기서도 정장을 입고 있다. 잠입하는 마당에 왜 굳이 정장을 고집하는지 의문이다. (정말 잘 보이게 잠입하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기지 보안시스템도 허당이고) 그리고 마지막 스테이지의 보스 그랜트가 천장에 매달린 무슨 로봇 비스무리한 것을 타고 있다는 모습에 이 게임은 60년대를 너머 저먼 오버 테크놀러지 안드로메다로 날아간다.

 그리고 바로 배드신 비스 무리한 걸로 넘어가면서 게임은 끝난다. 원작의 마지막장면처럼 베니스의 곤돌라에서 로맨틱하게 키스하는 것 따윈 없다. 그냥 이대로 끝난다. 무슨 <007 : 어쌔신 크리드>를 만들어달라는 것도 아닌데, 이탈리아 베니스 만드는 게 그렇게 어려웠나?

 

차라리 이 장면을 엔딩으로 해주었다면...

 

 원작영화에서 제임스 본드가 첫 등장에 강가에서 여자와 데이트를 하는 장면 혹은 M의 집무실에서 티타니아의 사진에 사인을 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이런 게임의 전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장면은 거의 삭제되었다. 하지만, 기차를 타고 탈출하는 장면에서 수류탄을 든 헬기 조종수를 저격하는 충분히 게임의 플레이로 활용될 수 있는 장면까지 삭제된 것은 매우 아쉽다. 몇몇 전투 시퀀스는 억지스럽고, 특수무기는 시대를 초월했다. 좀 더 60년대의 첩보전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할 수는 없었을까?

 사실 게임제작자에게 마치 편집증처럼 원작의 모든 것을 게임에 담아달라고 요구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이 무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이런 원작을 가진 게임은 소위 말하는 팬심을 가진 (팬심을 이해하는) 제작자가 필요하다. 그만큼 영화를 원작으로 한 게임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의 스토리텔링과 게임의 스토리텔링은 그 흐름이 다르며, 수동적인 것과 능동적인 것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같은 시놉시스에서 출발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내러티브를 가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원작에 없었던 심볼, 아이콘, 인데스가 등장하면 어색한 작품이 되어 버린다.

 게임 <007 From Russia With Love>는 레시피에서 꼭 필요한 것을 빼버리고 굳이 넣을 피요 없는 재료를 넣은 느끼하고 맛없는 ‘피쉬 앤드 칩스’ 같은 게임이었다. 내가 유년기부터 그렇게 좋아했던 원작영화는 PS2 시대에 ‘러시아에서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하고’ 그저 그런 액션게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한계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