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제이 가일의 싸움에는 한가지 중요한 것이 빠져 있었다. 바로 동기부여다. 냉정하게 생각해봤을 때 에이제이가 골든패스의 편에 서서 싸울 이유가 없다. 가일이 고향으로 돌아간 이유는 그저 죽은 어머니의 유골을 고향으로 모시기 위함이었다. 생전 어머니가 키라트에 대해 이야기한적도 없는데 유년시절을 미국에서 보내고 군복무까지 마친 미국인이 그 어떤 정신적 유대감도 없는 키라트의 해방을 위해 싸운다는 전개는 매우 억지스럽다.
단 게임 자체는 매우 휼륭하다. 전편의 확장판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게임 플레이 자체는 퇴화하지 않았으며 돈 값하는 알찬 구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게이머가 스스로 에이제이 가일이 되기에는 설득력이 매우 부족하다. 게다가 독재자와 맞서 싸우는 골드패스의 두 지도자들에게 숨겨진 도덕적 치부가 드러나는 순간 허탈감 때문에 헛웃음까지 나온다. 에초에 이 게임에는 무기상인 롱기누스를 제외하고 정상적인 인간이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롱기누스도 정상은 아닌것 같...)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이머는 방아쇠를 당겼다는 것이다. 게임의 마지막, 독재자 페이건 민은 가일 가족의 알려지지 않은 비극을 알려주기 전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내가 지금 누구랑 얘기하는거지? 어머니의 유골을 뿌리러 온 사람인가? 아니면 여기까지 오는 도중 미친듯이 살인을 저지른 정신병자?"
그의 대사는 제4의 벽 너머에 있는 게이머의 이중성을 지적하고 있다. 처음부터 그가 말한대로 게살만두 몇조각 먹다가 기다렸으면 만사오케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본래의 목적을 잊은 체 명분도 없이 전쟁에 참여한 게이머는 미친듯이 살인을 저지른 정신병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본작의 메인빌런 페이건 민은 게이머에게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작중 페이건 민의 모든 행동은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은 매우 치밀하게 짜여져 있다. 그가 가진 복잡하고 입체적인 면모는 게이머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호감을 가지게 하며 악당에게도 사실 사정이 있었다는 오래된 클리셰를 진부하지 않고 극적으로 표현한다. 페이건 민은 내러티브에서도 매력적인 빌런이지만 메타적 메시지를 던지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엔딩 이후 다시 게임의 시작으로 돌아가서 그의 말대로 얌전하게 게살만두 먹다가 진행할 수 있는 숨겨진 엔딩에서 에이제이는 어머니가 말했던 락쉬마나의 의미를 알게된다.
"잘 했어. 기분 좀 나아졌나? 죄책감 따윈 훌훌 털어버렸고?"
어머니의 유언을 실천한 그에게 페이건 민이 던지는 대사는 그토록 그리워했던 마음으로 낳은 아들에 대한 애정표현이자 피를 볼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닭은 게이머에 대한 그만의 위로이기도 하다. 게임의 폭력에는 항상 이유가 필요하다. 페이건 민을 전체 시나리오를 관통한 이후의 게이머에게 명분도 없이 벌어지는 살인이 얼마나 의미없는지를 알려준다. <파 크라이4>의 주제의식은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으며 오직 게임에서만 가능한 메타적 방식으로 전달된다. 그렇기 때문에 페이건 민은 네러티브 안에서도 네러티브 밖에서도 악역으로서 특별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게임의 단점을 뽑아본다면 진정한 아버지의 편에 서서 골든 패스의 위선자들과 싸우는 루트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엔딩에서 키라트를 떠나는 페이건 민의 마지막 대사는 더욱 잊혀지지 않는다.
"선택에는 결과가 따르는 법이야, 에이제이! 내가 키라트를 주마, 이 헬리콥터만 빼고!"
'FPS 게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콜 오브 후아레즈> : 총과 활의 괴리 (0) | 2025.02.23 |
---|---|
<파 크라이 3> : 내가 게임의 정의에 대해 말해 줬던가? (0) | 2024.04.26 |
<파 크라이 2> : 타는 목마름으로… (0) | 2024.04.05 |
<파 크라이> : 총격전이 만드는 각본 (1) | 2024.04.05 |
<하프라이프: 알릭스> : VR 게임 역사에 남을 강력한 저주 (0) | 2024.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