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 발언 하나 한다. 게임은 키보드, 마우스, 패드만 있어도 충분하다. 그 신기해보였던 Wii 눈차크 패드는 창고에 처박혔고 키넥트는 단종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무언가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게임을 그렇게 좋아하는 나조차도 경험해 보지 못한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알고 싶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다. 나를 속 좁은 게임탈레반이라고 비난해도 좋다. 게임탈레반은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잡기술이 아닌 재미라는 본질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VR기술이 장비가 처음 주목받았을 때도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웹진에서 호평받은 VR게임들 모두 굳이 VR로 할 이유가 없었으며, VR이라는 특성을 빼면 돈 주고도 사기 아까운 게임이 대부분이었다. 다행이도 인체의 아름다움을 다룬 영상 콘텐츠를 찍먹할 수 있었기 때문에 Meta Quest 2를 구입한게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밸브가 <하프라이프: 알릭스>를 발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VR게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가능해야 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본편의 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17번 지구에서 체험할 수 있는 상호작용만 해도 훌륭한 VR의 기준을 보여준다. 굳이 어떤 상호작용이 가능한지 나열할 필요는 없다. 현시대에서 민간에 보급할 수 있는 기기에서 가장 완벽한 가상현실을 보여준다. <하프라이프> 시리즈가 가진 장점인 디테일, 설명이 필요 없는 세련된 튜토리얼, 논리적 사고의 결과 구현과 결합하여 극강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어쩌면 이전의 시리즈는 그자체만으로도 FPS명작임과 동시에 VR명작 게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한 셈이다.
개인적으로 <하프라이프: 알릭스>의 재장전은 게임 경험상 가장 즐거운 재장전이었다. 특히 적들이 몰려들 때 기존의 FPS게임처럼 R버튼으로 재장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손을 벌벌 떨면서 탄창을 빼고 다시 탄창을 꺼내고 다시 탄창을 결합하여 재장전을 하는 상황은 전혀 다른 차원의 총격전을 보여주었다.
물론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게임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구성을 보여준다. 액션과 퍼즐을 적절하게 넘나들며 긴장의 완급 조절을 보여준다. 중간에는 제프라는 치가 떨리게 하는 보스를 배치하여 갑작스러운 호러분위기로 게이머의 목을 조른다. 제프와의 숨박꼭질은 진정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제프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포자 때문에 VR 콘트롤러로 입을 가려야 하는 아이디어는 큰 긴장감을 유발한다.
중력장갑 역시 플레이의 혁신을 제공하며 한번 더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자연스럽고 편리하게 게임을 위한 상호작용을 보여주며 마지막 스테이지에서는 포스그립 뺨치는 슈퍼웨폰으로 변신하면서 하프라이프 스러움이 무엇인지를 마지막까지 보여준다.
시리즈의 팬 입장에서도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압도적인 연출을 보여준다. 알다시피 벨브는 후속작과 관련하여 너무나 큰 죄를 지었다. 보르티곤트가 기지에 그린 고든 프리맨의 벽화는 기나긴 시간을 기다려온 게이머의 가슴을 시리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에서 13년만에 고든 프리맨이 되어 일라이 밴스에게 빠루를 건내받는 감각은 그동안 벨브가 시리즈의 팬에게 보내는 사과로 느껴졌다. 나는 그 사과를 받아들였다.
한가지 아쉬운 사실은 이 속죄가 앞으로 나올 수많은 VR게임들에 대한 저주가 되었다는 점이다.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VR게임에서 당연히 가능해야하는 것에 대한 기준을 만들었으며 게임으로서도 높은 성과를 보여주었다. 이 기준점을 통과하지 못한 게임들은 대부분 살 만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소신이 틀렸음을 증명할 새로운 <하프라이프: 알릭스>의 등장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까 이 씨발 새끼들아 빨리 3편 만들라고! 아 씨발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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