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평론에는 이 게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데… 후회하지 않고 감당할 수 있겠어?
세르비아인 니코 벨릭은 과거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 발칸 반도 평화 유지군으로 활동 중 한 동료의 배신으로 부대가 전멸했다. 그 후 아드리안 해 근방에서 외국인들을 밀입국시키는 일을 하다가 경찰에 들키자 물 속을 헤엄쳐 겨우 빠져나온다. 갈 곳이 없었던 니코는 미국에서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던 사촌 로만을 떠올린다. 그가 살고 있는 리버티 시티로 가지 위해 선원에 취직한 그는 새로운 곳에서 시작할 수 있는 새로운 인생을 기대한다. 그리고 자신의 부대를 배신한 자에 대한 복수까지… 하지만 도망자에게 미국은 간단하게 꿈을 이루게 해주는 장소가 아니었다. 몸에서 화약냄새가 진동하는 남자가 살게 될 곳은 결국 또 다른 전쟁터였다.
<Grand Theft Auto :VICE CITY>의 토미 버세티 이후로 <락스타 게임즈>는 훌륭한 스토리만 있다면 주인공이 대사를 가지고 있더라도 충분히 몰입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욕설과 비속어를 맛갈스럽게 사용하며, 흥미로운 컨셉과 개성 넘치는 캐릭터을 통해 뛰어난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Grand Theft Auto 3>가 갱조직간의 배신과 항쟁을 그려냈다면, <Grand Theif Auto : San Andreas>는 마지막 보스에 공권력을 등장시켜, 범죄자가 부패경찰을 처단하는 아이러니를 그려냈다. 독특하게도 <Grand Theft Auto IV>에서 벌어지는 가장 큰 갈등은 미국인이 아닌 이민자들 사이에서 벌어진다.
주인공 니코 벨릭은 범죄를 주제로 한 게임의 주인공 치고는 의리와 인정을 아는 뜨거운 가슴의 유로피안이다. 이방인에게 친절하지 못한 차가운 미국사회에서 니코가 마주치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은 보면 나의 20대 시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해를 떠올리게 만든다.
전역하고 1년 후 나는 대한해협을 건넜다. 외국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허파에 바람 들어가는 경험은 해보았을 것이다. 나는 외국에서의 생활에 묘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군대에서 지치고 기나긴 짝사랑의 실패로 마음이 찢어질 대로 찢어진 나는 새로운 환경에서의 생활이 나를 치유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미국에 도착을 하여 로만을 만난 니코는 그가 이메일을 통해 말했던 큰 집, 스포츠카, 여자들, 파티와 같은 아메리칸 드림이 모두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듣고 큰 실망을 한다. 자기 조국의 말도 다 까먹은 이 꼴통 이민자 새끼는 택시 회사를 운영하면서 알바니아인들에게 돈을 갚지 못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에게 돈을 빌려준 인간쓰레기 사채업자 블라드는 로만을 괴롭히면서 니코에게도 시비를 건다. 그는 빛을 무기로 로만의 여자친구 말로리를 건드렸다가, 결국 니코를 빡치게 만들고 부두에서 살해당한다. 그리고 니코는 다시 화약냄새와 피냄새가 진동하는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이전의 시리즈에서도 미션을 주는 의뢰인들이 서로 배신으로 인해 몰락해나가는 과정은 자주 볼 수 있었던 패턴이었다. 그 이야기의 패턴은 라고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블라드가 살해된 후 그의 보스였던 러시아 마피아의 수장 미카일 파우스틴은 니코를 고용하게 되고 미카일의 오른팔 드미트리는 그런 니코를 이용하여 마카일을 제거한다. 그리고 니코에게 보상을 주기 싫었던 드미트리는 이번엔 니코를 배신한다. 그들의 배신은 곧 리버티 시티에 기생하고 있는 이민자들의 분쟁이다.
내가 갑자기 시리즈를 이야기하면서 전혀 상관없는 일본어학연수의 경험을 이야기 하는 것은 이 게임의 상당수의 등장인물들이 내가 어학연수 시절 마주쳤던 도피유학자들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갑자기 외국에 나가서 자국 혐오증에 걸린 게 아니다. 이름을 언급할 수는 없지만 당시 내가 다녔던 일본어학원은 매우 좋은 시스템을 가진 학교였지만, 같은 학원에 있던 한국인들의 대부분이 도피유학자였던 게 함정이었다. 온 가족이 범죄자에다가 꼴통으로 가득 찬 아일랜드 출신의 맥리어리 가문에서부터, 난폭한 러시아 마피아 미하일, 쓸 때 없이 설치다가 한방에 훅 가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깡패 매니, 위조지폐를 밀수하려고 하는 북한출신의 김영국까지… 이 이방인들의 삽질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 어학원에서 국적에 따라 패가 갈리고 한국인들도 서로 패를 갈라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면서 싸웠던 기억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든다. (솔까말 도피유학 퀼리티가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운동중독자 브루시나 마약 딜러 엘리자베타와 같이 니코가 만나게 되는 미국인들도 별로 정상적인 인물들은 아니다. 그나마 단 한 명 정상적으로 보이는 한 ‘미국인’이 니코에게 접근한다. 니코는 말로리를 통해 소개받은 미셸과 데이트를 한다. 집에 새로 산 물건이 가득한 미셸은 니코에게 호감을 느끼고 먼저 전화를 하여 약속을 잡기도 한다. 혹시 이 세련된 여성이 니코같은 불법체류자에게 먼저 접근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내 일본유학시절에도 이런 한 명 여자가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나는 일본인들과 같이 술을 마셨다. 거기서 마이코라는 연상의 여자를 알게 된 적이 있었다. 동안의 작은 얼굴에 뚜렷한 이목구비 마치 야마토나데시코 같은 인상을 주는 미인이었지만, 다른 한국인 유학생들은 자세히 보면 주름이 보이는 얼굴이라고 그녀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한가했던 나는 그녀의 연락을 받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녀의 친구들을 소개받고, 차를 마시고 여행의 필요한 한국어를 가르쳐 주었다. 마이코가 한국에 다녀온 이유로 내가 다시 한번 연락을 했지만, 너무 바쁘셨던 나머지 나는 다시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여기서 부터가 나의 생각인데, 아마 그녀는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을 뿐을 것이다. 다른 한국인들이 30살 이상 먹은 나이 많은 아줌마를 만나고 싶지 않아 했기에 유일하게 연락을 받은 사람이 나 하나였을 것이다.
니코는 마약거래에 관여하게 되면서 미셸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녀는 정부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 정보원으로 감시를 위해 의도적으로 니코에게 접근했던 것이다. 귀국하기 전 나는 마이코와 짧은 안부문자를 주고 받았지만, 니코는 다시는 미셸과 만나지 않았다. 미셸도 목적을 가지고 니코에게 접근 했고 마이코 역시 한국어공부라는 목적으로 나를 만났다. 마이코에게 악감정은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가진 것 없는 이방인에게 접근하는 여자는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이다.
동유럽의 분쟁지역에서 사람을 죽이고, 지중해연안에서 범죄에 관여했던 니코가 미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곧 자신이 예전부터 잘 해왔던 것 바로 살인과 범죄뿐이다. 애초에 부도덕한 이민자들의 사회에 던져진 니코가 행복할 수 없는 것은 정해진 결말일 지도 모른다. 니코가 스트립클럽에서 육덕진 여자들의 댄스를 즐기고 내뱉는 대사 “이게 아메리칸 드림이야”가 그 전부를 말해준다. 시궁창에서 살았던 사람은 결국 미국에서도 시궁창에서 살게 되며, 시궁창 쥐가 친구였던 사람은 결국 미국에서도 시궁창 쥐와 친구를 하게 된다. 한국에서 입시에 실패한 사람이 외국에 나간다고 해서 최고의 교육환경을 만나면 바로 1류대학에 진학이 가능할까? 피나는 노력을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마주친 도피유학자들이 그랬으며, 경찰관이 되려고 했지만, 글을 몰라서 실패한 전직 갱단보스 드웨인도 마찬가지였다.
니코는 미셸을 통해 U.L.P(United Liberty Paper)라는 이름의 정부의 비밀요원을 알게 되고 그의 비밀임무를 해결해준다. 그리고 U.L.P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전쟁 당시 자신의 부대를 배신했던 인물을 헝가리 부쿠레슈티에서 납치하여 리버티 시티의 공항에 던져준다. 니코는 배신자 다르코를 추궁하지만 충격적인 사실을 말해준다. 바로 그 전우들이 고향의 이웃들을 학살했고 천달러에 전우들을 팔아 넘긴 것이다. 정작 그가 그렇게 찾아 죽이고 싶었던 복수는 미국에 없었다. 니코는 배신자의 입에서 진실의 무게를 느끼지만, 결국 다르코에게 총을 난사한다. 그리고 니코는 동료들을 잃었던 가슴의 허무함을 채우지 못해 괴로워한다. 사실 돈이 필요해서 사람을 죽인 건 니코와 다르코 둘 다 마찬가지였으니까…
사실 니코는 거기서 멈춰야만 했다. 페고리노 패밀리의 보스 지미가 조직을 살리기 위해 배신왕 드미트리와의 마지막 마약거래를 부탁한다. 니코는 여자친구인 케이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거래를 선택한다. 하지만 디미트리가 구매자들을 죽이고 물건을 빼돌리자, 니코는 돈을 가지고 도망친다. 로만은 우리들이 부자가 되었다고 자축하며 연인 말로리와 결혼하지만 거기서 드미트리가 보낸 킬러가 로만을 살해하면서 모든 것이 엉망이 된다. 로만이 살해당한 후 은신처에서 깨어난 그는 리버티 시티에 도착했을 때 옷을 입고 있다. 마치 기나긴 꿈을 꾼 것처럼 말이다. 니코는 드미트리의 은신처로 레이드를 간다 (거기서 지미를 죽이는 드미트리의 대사가 걸작이다 “너 같은 녀석이랑 나누자고 죽자 살자 달려 온 게 아니야”) 니코는 끝까지 드미트리를 추적하여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섬에서 드미트리의 아메리칸드림을 끝내버린다. 결국 로만과 니코의 아메리칸 드림도 함께 박살 난 것이다. 모든 비극이 종결 된 후 니코의 독백이 흘러나온다.
So this is what the dream feels like... This is the victory we longed for.
그래, 이것이 꿈의 느낌인가... 이것이 우리가 갈구하던 그 승리인가.
결국 모두의 아메리칸 드림은 말 그대로 "꿈"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벌어들인 돈과 명예 모두, 피로서 벌어들인 것들은 모두 비극으로 종결되었다. 또 지금 어디선가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도피유학을 가는 누군가가 꿈꾸는 신천지의 환상도 결국 하나의 꿈과 환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서의 새로운 생활이 나를 치유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 역시 니코와 다를 바 없었다. 이런 저런 갈등으로 인한 고통에 꿈에서 깨어난 순간 여기서 나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었다.
게임 <Grand Theft Auto IV>는 니코 벨릭이란 한 인간의 비극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보여 준다. 그 허상은 내가 젊은 날 보았던 다른 도망자들의 몰락을 떠올리게 한다. 어떤 한국인은 일본의 시민권을 얻지 못하고 돌아왔고 어떤 한국인은 일본인 친구 단 한 명도 사귀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의 3류 대학을 졸업한 한 남자는 피나는 노력 끝에 자신의 이력서에 새로운 일본의 3류 대학의 타이틀을 새겨 넣었다. 지인을 통해 마지막으로 들은 소식은 그들의 재팬 드림이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 복학한 나는 한 회사에서 진짜 유학파 (뉴욕 주립대, UCLA, 토론토대학교 등등)들과 같이 인턴을 한적이 있었다. 그들 덕분에 도피유학생들의 패기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다행이 나의 어학연수의 마지막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어학시험에서 JLTP시험에서 겨우 2급을 따고, 단골로 다녔던 한 술집에서 사귄 친구들로부터 송별회라는 생각지도 못한 선물도 있었다.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도 착한 여자를 만나게 되어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치유할 수 있었다.
가끔 주변사람들이 일본에서 취직하여 정착할 생각이 없냐고 묻는다. 그 질문에 “나는 아직 실패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니코 벨릭이 이미 가르쳐 주지 않았는가? 도망자들이 보는 환상은 하나의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는 것을 말이다.
PS.1 미션 Rigged to blow에서 러시아 마피아 미하일의 부인과 니코가 차를 마시면서 하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인생은 복잡하죠 전… 제가 이렇게 살게 될 줄 몰랐어요”
지금의 나를 되돌아 보게 하는…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씁쓸한 대사였다.
PS.2 부패경찰 프랜시스 맥리어리가 형 데릭의 살인을 사주하는 Blood brothers미션에서게이머는 선택을 하게 한다. 경찰 프랜시스를 살려주는 것이 이득이지만, 나는 데릭을 살리고 프랜시스를 저격했다. 나는 출세욕이 심하고 형제들을 저주하는 프랜시스가 정말 싫었다. 데릭을 살려도 아무 이득이 없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게임의 진행상의 선택과 분기에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게 진정한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스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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