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박스 게임

<마피아> : 한 소시민의 비극

WONO.ONE 2013. 12. 20. 16:35

 

※ 이 포스팅은 게임 <마피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로 게임이 오프라인으로 거래되던 시절, 게임샵에서 게이머를 사로잡는 첫번째 관문은 바로 패키치 상자였다. 게이머는 진열된 게임의 패치지 박스를 들고 제목을 체크하고 주인공이 그려진 포스터를 확인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패키지 뒷면의 설명을 읽으면서 이 게임이 어떤 재미를 주는 지에 대한 정보를 획득한다. 이런 정보는 정확히 주인공이 뭐하는 사람인가? 즉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특수부대요원이 주인공이라면 총을 쏘는 즐거움이 있을 것이고, 중세시대의 군주라면 대군을 통솔하는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인공이 범죄자라면 어떤 즐거움이 있을까?

 

 일루전 소프트웍스(현 2K 체코)에서 2002년도에 출시한 게임 <마피아>는 이미 그 제목과 포스터에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들러줄 것인지 직설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플레이어가 게임 속에서 경찰이 된다면 사회를 감시하고 범죄자를 잡아야 하는 의무가 주어진다. 이 의무는 일종의 동기부여이자 플레이 목적으로 작용된다. 하지만 범죄자가 된다면 우리는 의무를 뛰어넘는 대리체험의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게임의 문법은 반사회적이며 파괴적이다. 그 반사회적 행위를 통해 규칙을 파괴하는 일탈은 말 그대로 짜릿하면 재미있다. 게임 <젤다의 전설> 시리즈에서 신나게 항아리를 집어던지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대부분의 반사회적 행위는 전쟁의 병사들처럼 하나의 명분을 가지고 있다. 물론 게임 속에서 주인공의 자리를 캐스팅된 범죄자들은 그것을 천직으로 받아들이곤 하지만, 그 금지된 장난으로 진입하는 과정에는 각자의 사정이 존재한다. 게임 <마피아>의 주인공 토마스 안젤로 역시 그 만의 변명거리를 가지고 있다. 플레이어는 이 게임의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서 범죄자의 인생을 선택하지만, 결코 이 게임이 주인공은 자신이 선택한 인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임 <마피아>는 주인공의 일상이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변화하면서 시작된다. 평범한 택시운전사였던 토마스 안젤로는 어느 날 세력 다툼 중이었던 마피아2명을 차에 태워주게 된다. 그들을 택시에 태워 도망치게 해준 안젤로는 살리에리 패밀리에게 사례를 받지만 그로 인해 반대편 세력의 마피에에게 목숨을 위협 받게 된다. 결국 자신이 도움을 주었던 살리에리 패밀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면서 마피아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게임의 초반 플레이어는 게임이 아닌 노동에 가까운 택시기사일을 위해 차를 운전하면서 잠시 동안 지루한 플레이를 강제로 진행하게 된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반대파 마피아의 공격에 살리에리 패밀리의 아지트로 도망치게 되고 이후 부터 플레이어는 본격적인 마피아 생활을 체험하게 된다. 금주법이 시행된 1930년대의 미국의 마피아는 지역사회에서 존경 받는 명사로 그려지지만, 안젤로의 위치가 높아질 수록 그는 좀 더 불법적인 일에 다가가게 된다. 플레이가 흥미진진해 질 수록 반대파인 모렐로 패밀리와의 갈등도 거세진다. 안타까운 사실은 토마스 안젤로가 완벽한 마피아는 아니라는 점이다. 안젤로는 마피아의 일원으로서 많은 돈을 벌고 결혼도 하지만, 몇몇 미션에서 처리해야 할 주적을 풀어주는 큰 실수를 저지른다. 조직폭력배가 배푸는 희생자에 대한 인정은 곧 죽음으로 이어지는 사망복선과도 다를 바가 없다. 안젤로는 동료와 함께 비밀리에 은행강도로 큰 돈을 벌지만, 동료는 보스에 의해 살해 당하고, 조직은 안젤로가 과거에 배신자들을 풀어준 것을 빌미로 그를 제거하려고 한다.

 

 <마피아>는 유독 플레이 중간 중간에 일을 많이 해야 하는 게임이다. 운전 조작 미션은 너무 많고  (대리운전 기사가 되어야 하는 샌드박스 게임 주인공의 슬픈 운명) 이런 저런 잡스러운 일이 너무 많다. 그 만큼 대부분의 임무는 그의 능동적 행동이라기 보다, 누군가의 명령이 대부분이다. 그의 능동적 판단에 의해 실행한 일들은 그가 조직으로부터 버림받는 이유가 된다. 중간보스를 살해하고 도망친 안젤로는 가족과 자신의 안전을 위해 경찰에 살리에리의 모든 비리의 증거를 넘겨주고 새로운 신분을 얻게 된다. 하지만 수년이 지나도 감옥으로 간 보스는 그를 끈질기게 추격하고 백발의 노년이 된 안젤로는 자신의 집 앞마당에서 보스가 보낸 암살자들을 만나게 된다. (살리에리씨가 안부를 전하라고 하신다...라는 인사와 함께)

 

 게임 <마피아>는 상당히 비극적인 게임이다. 이 게임의 주인공은 자신의 의지로 범죄자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결국 자신의 의지를 통한 올바른 행동의 결과로 최후를 맞이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범죄자의 길을 선택한 다른 게임 속의 주인공들 보다 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 반전은 영화 혹은 소설에서는 흔한 그리고 진부한 엔딩이지만, 임무를 해결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기대한 게이머에게는 큰 배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범죄의 길에 다다른 모든 소시민들에게는 이런 비극적 최후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지금 기준에는 너무 어렵고 그래픽은 어색하지만, 컷씬의 연출과 스토리텔링 그리고 시대 재현 수준은 수준급이다. 게다가, 수동-자동 기어변속과 차량의 파괴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GTA시리즈보다 진보적이다. <마피아>는 후속작 역시 샌드박스의 형식을 띄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스토리텔링이라는 강점을 살려 샌드박스 게임이 아닌 이야기에 집중하는 게임이 되지 않는 것이 아쉽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내가 이 게임을 발매 당시에 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만약 동시대에 이 게임을 즐겼다면 더 큰 탄성을 내지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뒤늦게 나마 이 게임의 엔딩을 본 것은 행운이었다. 안젤로는 마지막 독백에서 균형을 이야기한다. 세상은 종이에 쓰여진 법이 아닌 사람에 의해서 움직인다. 안젤로는 법을 지키지 않는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결국 균형을 무너뜨린 사람이다. 어떤 인생을 살지는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렸다는 그의 말처럼 그가 좀 더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균형을 지켰다면 아마 천수를 누렸을 것이다. 모든 것을 얻으려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잃지만, 아무 욕심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애초에 평범하지 않는 길을 걸으면서 착한사람이 되려고 했던 안젤로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될 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