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박스 게임

<Grand Theft Auto 5> : 아버지는 남자보다 고독하다

WONO.ONE 2014. 1. 2. 14:46

 

 

 어린이날 그리고 크리스마스, 장난감을 선물 받을 수 있었던 날들을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 것 내가 선물 받았던 장난감의 정확한 가격을 알지 못했다. 나는 아버지가 무엇으로 장난감을 구입하는지 알지도 못했으며, 그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다는 만족감에 들떠 있었다. 며칠 전 공적인 일로 자동차 모형을 하나 구하기 위해 대형마트의 레고 코너를 기웃거리던 나는 가격표를 보고 기겁했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다 치더라도 20여년전 나에게 금방 부서져 사라질 운명이었던 레고 경찰청 세트를 사주셨던 아버지 역시 계산하면서 이 플라스틱 덩어리들의 가격표를 보고 기겁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가 뼈빠지게 번 돈을 빨아먹고 웃고 있었던 작은 기생충이었다. 가볍기만 한 지갑을 들고 마트를 나오던 나는 할 수만 있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이 비싼 장난감을 사 달라고 아버지를 졸랐던 나 자신의 귀싸대기를 후려치고 싶었다.

 <Grand Thief Auto 5>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마이클 드 산타는 이전 시리즈의 주인공들과 비교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다는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프랭클린의 미션 중에 게이머는 자연스럽게 이 가정이 콩가루집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마이클은 아내의 불륜으로 충동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후 그 대가로 큰 돈을 지불하기 위해 다시 범죄의 길로 들어선다. 언제나 좋은 부모가 되고 싶었고 가족을 사랑하고 꿈 같은 삶을 살길 원했던 마이클은 그 바램을 방해하는 외부의 적과 싸우게 된다. 그 중에는 오래전 배신한 자신의 친구도 있다.

 <GTA>시리즈는 마초적이며, 필연적으로 모욕적인 폭력을 저지르는 게임이다. 이전 시리즈에서 부터 매력적인 주연들이 차례차례 등장했지만, 자유도를 매력으로 내세우는 샌드박스 게임에서 주인공에게 뚜렷한 캐릭터성을 부여하는 것은 오히려 그 행동의 일관성을 흔들리게 만든다. 트레버와 같은 막 나가는 싸이코패스는 어떤 행동을 하던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안정과 성공이라는 목적을 가진 마이클과 프랭클린은 그 캐릭터성을 위해 미션에서 자유도가 사라지거나, 자유로운 선택이 있더라도 그 뚜렷한 캐릭터성에 위배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캐릭터성이 <GTA5>에 대한 게이머의 몰입을 크게 방해하지는 않는다. <GTA5>의 인물들은 불안하고 시니컬하며, 혼란스럽지만 게이머가 그 감정을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된다. 그것은 이 게임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재미있는 게임과 재미없는 게임이 있다면 그 사이에는 게임을 가장한 노동이 있다. 장롱면허자들이 넘쳐 나는 샌드박스 게임의 세계 속에서 게이머는 항상 대리운전자가 되어야 하며 때로는 이게 게임인지 노동인지 모르는 사태가 벌어진다. 게임속에서 노동을 반복하게 되면, 아무리 격정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하더라도 게임 속 캐릭터에 몰입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끌어내기 힘들어진다. 반면 <GTA5>의 게임플레이는 단연컨데 재미있다. 캐릭터가 3명으로 늘어난 만큼 놀 거리도 풍부하며, 이 3명을 번갈아 가면서 플레이 하는 미션 역시 흥미롭다. 과연 배경디자인과 미션 그리고 시나리오가 어떤 방식으로 제작되었는지 그 과정에 대한 궁금증도 생겨난다. 이 게임의 중심인물인 마이클의 행동 하나하나는 부메랑처럼 그에게 돌아와 다른 고난과 역경의 미션을 경험하게 하지만, 그만큼 게이머는 <GTA5>라는 지상 최대의 범죄 시트콤에서 벌어지는 비극과 희극에 집중하게 된다.

"난 언제나 좋은 부모가 되고 싶었어요. 가족들을 사랑하고 꿈 같은 삶을 살고요. 근데, 그러면서도 또 다른 삶도 같이 가지고 싶어했죠."

 

 <GTA5>에서 주인공들이 만나는 로스 산토스의 인간군상(부패한 정부요원, 인종차별주의자, 사이비종교, 마약상 등등)들은 현대사회에 대한 우화이면서 우리가 세상에서 마주치는 험한 세상에 대한 은유다. 그 부조리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도 존재한다. 마이클이 집으로 돌아갔을 대 그 누구도 반겨주지 않는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마이클 같은 '배반의 아이콘'을 보고 나의 아버지를 투영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아들인 지미는 때로는 나 자신을 뒤돌아 보게 하면서 나를 우울하게 한다. <GTA5>는 돈을 버는 미션보다, 아무 대가도 없는 미션도 많다. 그가 벌어드린 돈은 다른 누군가에게 바쳐야 하는 대가들이다. 지미는 이 부조리에 일조를 하며 고용주들이 마이클의 노동력과 총알 가솔린을 착취할 때 지미는 그의 통장에서 의료보험비를 빼 먹는다. 마이클이 집으로 돌아갈 때 "아빠 돌아왔다!"하고 소리를 쳐도 지미는 방구석에서 게임에 빠져 있거나, 어딘가에서 아버지가 번 돈을 낭비하고 있다.

 마이클이 트레버에 프랭클린을 "내가 항상 원하던 아들"(That's Franklin, the son I always wanted)이라고 소개하는 장면은 나에게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분명 나에게도 아버지에게 최소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난 아버지에게 당당하게 "Aaahole!"이라는 욕설을 내뱉는 지미와는 달리 아버지를 보고 작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보다 더 키가 작고 주름과 흰머리가 당신의 나이를 말해주고 있지만, 아버지는 항상 나보다 더 큰 거인이었다. 자유도가 흘러 넘치는 세상에서 내가 불의를 보고 흥분하고, 야비한 복수를 하면서 적을 늘려나가고, 수많은 실패를 경험할 때 아버지는 항상 '어른스러운 태도'로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에게 존경 받았다. 위기의 순간을 이겨내면서 가족을 지켜온 나의 아버지의 청춘은 마이클 보다 더 치열하고 괴로웠을 것이다. 마이클이 마주친 것과 같은 수많은 웃기지도 않는 우화들 속에서 항상 규칙을 지키면서 최선을 다해온 사람이 바로 나의 아버지였다. 나는 지미처럼 "왜 내가 이런 중년의 위기 지랄하는 아빠 손을 잡아 줘야 해?" 이딴 소리를 짓거리는 아들은 아니지만 분명 나의 아버지에게도 힘든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수많은 위기의 순간을 외면했을 때 아버지는 항상 남자보다 고독했다. 

 전편에 비해서 <Grand Thief Auto 5>에는 유머와 즐거운 풍자가 담겨있다. 하지만 그 풍자의 대상이 나 자신이라는 것을 느꼈을 때 마이클의 스토리는 더 이상 나에게 즐거운 게임이 아니었다. 앞으로도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고 또 나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아이가 나와 같은 공간에 있는 상황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나도 아버지만큼 존경받을 아버지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마이클이 트레버를 배신한 것은 평범한 가정을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이클이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지미와 트레이시가 반복하지 않길 바랬을 것이다. <GTA5>의 엔딩을 본 후 며칠 후 아버지와 같이 산책을 할 기회가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아버지는 힘들었던 월급쟁이 생활을 뒤돌아보며 나는 다른 인생을 살길 바랬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했던 월급쟁이 샐러리맨이야 말로 최고의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당신이 살아온 인생을 존경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PS.1 다시 글을 보니 오그라드는 군요. <GTA5>를 하고 부모님 전상서를 쓰고 있으니, 저도 황당합니다. 아마 이 글을 보고 게임 한 후 무슨 헛소리냐? 아버지와 마이클이 동급이냐? 하고 의문을 제시할 분들도 많을 텐데.. 전 마이클이 아니라 지미를 보고 아버지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수많은 아버지들이 살아온 세상이 마이클의 고생보다 더 험난했을 겁니다. 그만큼 최선을 다해오신 아버지에게 지금은 보여드리지 못하더라도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