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연수시절 사소한 오해로 어학원에서 한국사람들 끼리 사이가 틀어진 적이 있었다. 나보다 먼저 유학을 온 사람들의 갈등에 휘말려 큰 스트레스를 받은 나는 충동적으로 머리를 모히칸 스타일로 밀어버렸었다. 이 헤어스타일을 공개한 직후 지인들로부터 맹비난을 받았다. 대부분의 쿠사리들은 '왜 머리를 그렇게 했냐?' '너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더 잘 어울리는 머리가 있느데 나는 너를 걱정하기 때문에 말하는 거다!' 이 세 가지였다. 이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나와 같은 여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와 같은 것 혹은 나의 기준에 맞추는 것에 대한 강요는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오지랖'이라는 저주 받을 종특에 기원한다. 한국사회는 정답이라는 기준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완벽한 감옥을 구축한다. 그 안에는 자신들의 기준에 벗어나는 구성원을 교정하지 않고는 못 버티는 (더 따위가 감히 헤어스타일을 바꿔!) 감시자들이 넘쳐 난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것이 국경을 초월하여 한국이라는 공간을 벗어난 순간에도 같은 한국인 사이에서 똑같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딴 오지랖만 없애버린다면 OECD국가의 국민 총생산 상위권도 꿈은 아닐 것이다.
가끔 게임은 커스터마이징 모드를 통해 잠시 나마 이 감시자들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물론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이 단순히 오타쿠를 위해 모에요소 데이터베이스를 모아 놓은 자위기구의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커스터마이징 모드에서 젊은 세대의 게이머들은 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 혹은 가장 이상적인 (성적판타지를 충족 시킬 수 있는) 이성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다른 게이머들은 오히려 자신과 유사한 모습의 캐릭터를 만들어내거나, 자신이 평소에 실현 불가능한 스타일을 실현한다.
<세인츠 로우> 시리즈는 순도 100%의 뽕끼를 자랑하는 샌드박스 게임이다. <GTA>시리즈의 짝퉁에서 출발한 이 시리즈는 시간이 지나면서 GTA가 잊었던 것들을 되찾아 주면서 시스템의 완성하는 것을 잊지 않은 미덕을 지니고 있다. (산 안드레이스 클리어 직후 2편을 했던 나는 정말 이 게임이 편했다. 특히 차량배달시스템 최고!!!) 캐릭터의 움직임은 더욱 자연스러우며 공격과 싸움에 있어서도 속도감을 보여준다.
사실 <세인츠 로우>의 자유도가 기가 막힌 스토리텔링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에 내가 하고 싶었던 스타일을 하고 도시를 누비는 즐거움은 정말 끝내준다. 그것은 다른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모든 게임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세인츠 로우>시리즈가 보여주는 약을 한사발 빨아 재낀 상식을 벗어난 세계는 감시자들이 구축하고 있는 정답세계의 정 반대편의 모습을 보여준다.
수염 깍으라고 소리치는 학교선배도 없고, 귀걸이를 하고 피어싱을 했다고 양아치 보는 것처럼 사람을 백안시하는 꼰대들도 없다. 모히칸 스타일로 머리를 하고 멋진 수염을 하고, 귀걸이와 피어싱을 한다. 그리고 해괴망찍한 꽉 끼는 아방가르드한 패션의 옷을 입고 거리를 누빈다! 나만의 커스터 마이징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캐릭터를 통해 적들을 대형딜도로 두들겨 패는 것은 마치 수많은 오지랖으로 무장한 정답사회의 괴물들에게 죽빵을 날리는 쾌감을 선사한다.
자유와 개성을 중요시여기는 척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오지랖이라는 질병이 지배하는 정답사회는 개개인의 자유로운 커스터마이징을 금지한다. 유행에서 부터 관념까지 해야 할께 너무 많고 하지 말아야 할께 너무 많다. <세인트 로우> 시리즈의 스틸포트와 스틸워터의 거리에는 진정한 관념의 자유가 있다. 어학연수시절 내 마음대로 멋대로 입고 듣고 먹고 다녀도 그 누구도 함부로 참견하지 않았던 자유가 그리워지면 나는 항상 이 게임을 꺼내 거리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본다. 당신이 나와 같이 이 지긋지긋한 정답사회를 혐오한다면 난 당신에게 꼭 이 마약을 추천하고 싶다. 환각속에서 당신에게 쓸 때 없는 정답을 강요하는 자들에게 딜도 매타작을 날리는 쾌감을 당신도 꼭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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