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시작에서부터 연극, 오페라, 소설, 영화, 뮤지컬 등등 다양한 예술의 표현양식이 등장했다. 이 매체의 서열화에서 가장 밑바닥에 게임이 위치하고 있다. 소위 서브컬쳐의 일부로 분류되는 게임은 사회적으로 마이너한 위치에 있을 수 밖에 없다. 아무리 한 게임의 수익이 블록버스터영화의 수익을 뛰어 넘더라도 아직도 사회에서는 게임에 대한 취미를 드러내는 것이 터부시되는 경우가 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그 안에서도 메이저와 마이너가 갈린다는 사실이다.
<월드 오브 워크레프트>나 <리니지>를 즐기는 절대 다수의 게이머들이 있다면, 그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게이머들이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소수의 게이머들이야 말로 순수하게 게임을 즐기는 가장 전통적인 형태의 게이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수의 취향을 가진 게이머들은 소수집단 특유의 결집성이나 방어기제를 보인다. 혹은 그들만의 철학을 만들게 된다. 그런 소수의 게이머들이 머무는 성역은 걸작도 명작도 아니다.
게임에는 걸작과 명작이 있으며 대작도 있다. 혹은 자기 과시와 현금거래의 돈벌이를 위한 대작도 존재한다. 하지만 가끔은 그 어느 카테고리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극단적인 취향을 보여주는 게임이 있다. 게이머들이 가진 대중적인 취향을 빗겨나가면서 독특한 개성을 폭발시킨다. 우리는 존경을 담아 그런 게임들을 <괴작>이라고 부른다.
장의사출신의 게임제작자 스다 고이치이름을 알린 <킬러7>은 소수를 위한 대작이자, 게이머의 취향을 모독하는 명작이며, 독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작이기도 하다.
가까운 미래, 인류는 지구상의 모든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태평양 상공에서 일제히 폭발시키는 '하나비' 를 통해 전쟁의 원인이 근절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정체 불명의 생물체 '헤븐즈 스마일'이 출현하여, 세계 각지에서 자폭 테러를 일삼는다. 주인공인 킬러 7은 신 조차도 죽이는 것이 가능하다고 알려진 최강의 암살자. 그 능력을 활용해, 일반인은 살해는 커녕 저지조차 할 수 없는 헤븐즈 스마일에 대항해 정부의 의뢰를 해결한다.
하만 스미스라는 인간의 육체에 모인 다른 7명의 킬러,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 킬러들의 인격을 교체하면서 적과 싸운다. 이 설정 하나만으로도 나는 발매 전 엄청난 스타일리쉬 액션게임을 기대했지만 그 내용물은 나의 기대를 산산조각 박살내고 있었다.
허먼 스미스라는 인간의 몸에는 7개의 인격이 모여있다.
가르시안 스미스는 나머지 인격을 관리하는 중간관리직역할이다.
입의 거친 백인남자 댄 스미스는 오만하고 위압적인 인물이다.
단 스미스와 푸에르토리코 출신 좀도둑 코요테 스미스와 관계는 정말 최악이다.
맨발의 피투성이의 짧은 드레스를 입은 카에데 스미스,
선글라스에 시원하게 웃통을 벗은 케빈 스미스,
시력을 잃었지만 박쥐 같은 능력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콘 스미스,
그리고 제작자 스다 고이치의 취향을 강하게 반영하는 루차 리브레의 선수 마스크 드 스미스
그들의 다층인격으로서 허먼의 몸에 공존한다. 그들은 스미스 동맹 혹은 킬러7으로 불리 운다.
게이머는 헤븐즈 스마일이라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의 괴물들을 처치하는 여정에서 이 7명의 인격이 가진 각기 다른 능력을 사용하여 맵을 탐색하고 아이템을 얻고 최종보스로 가는 문을 열어야 한다. 사실 <킬러 7>은 악명 만큼 그저 이상한 것이 전부인 게임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조사를 통해 길을 열어가는 구조는 단순하지만 인격을 깨우고 교체하면서 진행하는 방식은 매우 참신하다. 잔류사념이라는 존재도 매우 흥미롭다. 스미스 동맹이 처단한 킬러나 희생자가 귀신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절거린다. 게임 속에서 게이머가 처단한 보스의 유령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묘한 느낌을 준다. 아마 보스의 유언을 이런 형태로 들려주는 게임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다가가 보면 <킬러7>은 어드밴쳐와 FPS가 기묘한 형태로 결합된 시스템으로 게이머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게임에서의 이동은 TPS스타일의 시점을 채용하지만 황당하게도 (일부러 불편함을 느끼게 하기 위한 것처럼) 시점이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형태로 고정되어 있다. FPS스타일의 전투시스템은 주류FPS게임이 보여주는 직관적 살인의 쾌감과는 거리가 멀다. 자유도는 이미 쓰레기통에 처박았고, 뭔가 억지스러운 것을 게이머에게 강요한 느낌도 든다.
스토리를 진행하기 위해 힌트를 주는 방식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데, 잔류사념으로 출현하는 오윤현에게 힌트를 듣기 위해, 그가 들고 있는 진실의 가면을 쏘면, 그는 양 손으로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면서 게이머를 모독한다. 패배한 개새끼라는 과격한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수수께끼 하나 제대로 풀지 못하냐는 조롱이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마치 극소수의 취향을 가진 비주류가 다른 주류를 역으로 조롱하는 느낌도 든다.
하먼의 반지를 돌려주는 잔류사념 수지 섬너는 가장 정신 나간 형태로 등장하는데, 머리만 내놓고 등장하여 끔찍한 악담을 주절거린다. 깜찍한 이모티콘과 함께 말이다.
스토리는 불친절 하기 짝이 없고 갑자기 앞 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 전개로 가득 차 있다. 분명 초반에 허먼 스미스와 대립하고 있던 쿤란이 갑자기 후반부에서 허먼과 사이 좋게 체스를 두다가 기관총을 세례를 맞는다. 폴리곤도 아니고 카툰 랜더링도 아닌 기묘한 그래픽 연출에 갑자기 특정 챕터에서는 극단적인 일본 애니메이션의 연출방식이 사용된다. 그리고 일본의 대중문화의 히어로물에 대한 노골적인 패러디가 등장하여 이전까지의 하드보일드적 분위기에 찬물을 끼 얻는다.
이쯤 되면 <킬러 7>의 연출의 특징을 알 수 있는데, 차갑고 건조하고 하드보일드한 분위기에 갑자기 그것과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레슬링, 이모티콘,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일본 서브컬쳐의 패러디… <킬러 7>을 이루는 요소들은 그 자체만으로는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이 <킬러 7>의 하드보일드함, 혹은 건조함과 같이 공존할 때 이상한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 마치 일본간장과 와사비를 곁들인 미국식 스테이크와 같은 기식을 맛보는 느낌이다.
대체 <킬러7>은 어떤 방식으로 즐겨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 평가해야 하는 작품일까?
하드보일드 액션의 탈을 쓴 <킬러 7>은 사실 게이머를 무시하고 자신의 취향에 매진하는 극단적 오만의 끝을 보여준 작품이다. 스다 고이치는 로봇, 특촬물 혹은 레슬링에 관한 자신의 취미를 잔혹함과 버부려 냈다. 게이머는 이해할 수 없는 이미지의 폭주의 끝에 선택에 따라 일본을 멸망시킬 수 있는 충격적인 엔딩에 다다른다. 이 때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에 따라서 게이머는 자신의 게이머로서 정체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킬러 7>은 스토리를 해석하기 힘든, 아니 불가능한 게임이다. 하만 스미스를 간호하는 가정부 사만다 싯본은 하만을 잔인하게 학대한다. 하지만 하만이 각성하면 갑자기 순종적인 메이드로 변한다. S와 M를 넘나드는 그녀는 마지막에 더치 와이프 같은 모습으로 죽어 발견되는데, 그녀의 정체는 무엇인지? 그 어떤 설명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 존재 자체가 더치 와이프를 본 스미스의 환상 자체일까? 하만 스미스를 주인님으로 부르면서 따라 다녔던 이와자루가 사실 쿤란이라는 반전은 대체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일까?
제작진은 <핸드 인 킬러7>이라는 설정집을 출시했지만 오히려 더 많은 오류와 모순으로 게이머의 뒷통수를 쳤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모호하고 논리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스토리가 게이머에게 다양한 방면에서 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줄지도 모른다. 애초에 이 게임의 스토리는 뭔가 정상적인 척도 하지 않았다
미국 야당은 정권전복을 위해 이민관리국을 통해 쿤 란에게 인간을 유출한다. '신의 손'을 가진 쿤 란은 이 인간을 재료로 (정확히는 인간의 장기) 헤븐즈 스마일을 만든다. 사실 자신의 잇속을 채우기 위해 국민을 팔아 넘기는 정치적인 개자식들이 어디 한둘인가?
스미스 동맹에게 선전포고를 한 안드레이 얼메이다의 회사 퍼스트 라이프의 본사가 있는 텍사스의 인터시티에서 그는 거의 신성시된다. 하지만 그의 회사의 건물은 황당하게도 거대한 판낼로 되어 있다. 거대한 권위의 본질이 쓸 때 없이 거대한 거짓말로 이루어져있던 것이다. 모든 권위를 의심해 볼 만한 필요가 있다. 현실에도 이런 판낼로 만들어진 허울뿐인 신은 얼마든지 있다.
미국의 이민관리국을 공격하면서 킬러7의 표적이 된 커티스 블랙번은 중증의 로리콘인데, 그의 양녀인 아야메 블랙번은 일본만화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미소녀의 가면을 쓰고 특촬물을 흉내내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이는 일본 서브컬쳐 속에 암처럼 숨어있는 페도필리아적인 속성을 풍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이 해석에 정답은 없다. 미치도록 폭주하는 이 게임의 스토리에서 정답은 없으며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와자루의 대사처럼 <킬러 7>은 정말 위험한 게임이다. <킬러 7>에는 게이머들이 싫어할 만한 불쾌하고 비논리적인 독소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게임을 좋아하는 이 사회의 비주류들은 이런 독소를 만들어내는 그 생각에 열광한다. 사실 하나의 게임을 만드는 것에 있어 항상 게이머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강박관념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오히려 매력적인 게임에는 게이머가 원하는 것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오만과 독선이 필요하다. 스다 고이치는 오만과 독선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려 <킬러 7>이라는 위험만 물건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그 독에 취해 머리가 아파오고 가슴이 답답하더라도 이상한 청량감을 느낀다. 대중적인 취향에서 가장 동떨어진 성역을 찾은 것처럼, 게이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100%에 가깝게 끌어올린 스다 고이치의 세계는 그런 청량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존경을 담아 <킬러 7>을 '괴작'이라고 부른다.
<킬러 7>을 하고 분노하면서 혹평을 해도 좋다. 분명 이 게임은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다 고이치는 이 하나의 괴작으로 충분히 기억될 자격이 있다. 스테이지의 구성 혹은 연출방식에 대한 변주, 프로레슬링, 고어함 등등 그를 상징하는 것의 완성이 이 게임에 있다. 당신이 그 스다 고이치의 폭주하는 취향의 소용돌이에 동조한다면, 쾌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한다면 고통스러울 것이다. 물론 그는 당신의 불만에 귀를 귀 울이지 않는다. 아마 (실제 발언 했던 것처럼) "게임 한번 만들어 본적도 없는 주제에 씨부렁대지 말아라"하고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세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킬러 7>은 쿨하다. 그리고 정말 위험하다. 동시에 모든 것은 하만의 이름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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