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드밴쳐 게임

<이브 : 버스트 에러 플러스> : 미스테리를 읽는 즐거움

WONO.ONE 2010. 3. 22. 15:39

 


어드밴쳐게임의 한글화
 콘솔게임의 공식적인 한글화와 정식발매가 판타지나 다름없었던 90년대, 게이머로서 내가 가장 호기심을 느꼈던 장르는 어드벤처였다. 텍스트 어드밴처에 경우 잡지를 통해서 단편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혹시 게임을 구한다 치더라도 언어적인 문제때문에 사전과 옥편이 없다면 게임 진행차체가 불가능했다.
(평범한 중고생에게 영어 혹은 일본어 원서를 읽으라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으니까)
 물론 인터넷의 시대가 열리면서 몇몇 성인용 어드밴처게임의 비공식적인 한글화 덕분에 <유작> 혹은 <동급생2>와 같은 불멸의 원작을 즐길 수 있었지만 사실 그건 10대의 철없는 성적호기심때문이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게임자체를 즐긴 것을 아니었다. 
 PS2의 정식발매 이후 텍스트 어드밴쳐의 한글화는 개인적으로 가장 반가운 소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이머로서 장르편식을 경계하면서 꼭 도전해보고 싶었던 장르가 나에게는 어드밴쳐였기 대문이다.

일본웹에서 찾은 칸노 히로유키님의 사진

 

 일본식 텍스트어드밴쳐의 거장 '칸노 히로유키'(菅野ひろゆき)의 걸작 <이브 버스트 에러>는 95년 11월 일본제PC PC-9801과 97년 1월 세가세턴으로 한번 선보인 작품으로 2004년도에 PS2로 리메이크된 작품이다. 후속편이 출시되면서 시리즈의 질이 떨어졌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거장의 명작으로서 어드밴쳐를 접해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하나의 교과서로서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어드밴쳐는 어떤 게임인가?
 어드밴쳐게임이란 게임디자이너가 구축해놓은 스토리속에서 수수께끼와 퀘스트를 해결하고 이야기를 진행하는 게임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말 그대로의 스토리텔링을 즐기는 것을 말하는데 텍스트 어드밴쳐는 그 어드밴쳐의 가장 기초적인 형태를 띄고 있다고 할 것이다.
 
유혈이 낭자하고 화려한 그래픽이 아니라 사진과 텍스트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할지라고 그 텍스트 속에 어떤 장르가 숨겨져 있느냐에 따라 멜로소설도 될 수 있고, 모험소설도 될 수 있다. <이브 버스트 에러>는 미스테리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미를 끌만한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무장하고 있는 게임이다.

한국배우 김선아를 떠올리게 만든 '호오죠 마리나'와 직감에 의존하는 사립탐정 '아마기 코지로' 이 게임의 두 주인공

 

미스터리를 읽는 즐거움
 
서점에 가서 미스터리서적의 섹션에서 책을 고르다보면 마치 영화예고편을 모아둔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제목과 표지에서 부터 간략에게 압축한 스토리를 읽으면서 이 책에 담긴 사건과 비밀을 상상해보면서 가장 재미있는 책을 고르곤 하는데 멋진 소설이라면 그 작가만의 테크닉으로 비밀 너머의 진실로 다가가는 여정속으로 독자를 이끌어 낸다.
 
<이브 버스트 에러>라는 미스테리에는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카츠라기 탐정사무소'소속의 탐정 '아마기 코지로'는 범죄행위를 저지른 자신의 스승이자 애인의 아버지인 '스즈키 겐자부로'를 밀고한 후 탐정소를 나와 홀로 '사립탕정'의 길을 걷는다. 하루하루를 근근히 버텨가던 그는 친구의 소개로 상당한 보상금이 걸린 미술품 탐색의뢰를 맡게 된다. 한편 또 다른 주인공 '호오죠 마리나'는 일본의 첩보기관 내각조사실 소속 1급 특수요원으로 새로운 임무를 위해 미국에서 일본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엘디아 왕국 대사 '미도'의 딸의 경호를 맡게 된다.
 
<이브 버스트 에러>는 겉보기에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사람의 목적과 임무가 하나의 사건의 접점으로 다가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이 미스테리 소설의 작가가 사용하는 테크닉은 사건을 바로 두사람의 시선이다.
 
이 게임에는 멀티사이트시스템이라는 독특한 진행방식이 있다. 전형적인 테스트어드밴쳐의 진행방식(말 그대로 텍스트를 읽고 다음 진행장소와 행동과 질문을 선택하는)이지만 게이머는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자신이 원하면 주인공의 시점을 바꾸어가면서 진행할 수 있다. 이 <이브 버스트 에러>라는 소설에는 두 명의 주인공의 시점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하나의 사건을 같은 시간에서도 다른 지점에서 목격하면서 두 주인공은 각기 다른 정보와 증거를 확보하고 또 다른 관점에서 사건을 해석하게 된다.
 
플레이어는 두 사람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부분적인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미스테리를 풀어나가는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미스테리와 미소녀의 결합을 보여주는 대표작?

 

 수동적인 게임시스템에서 능동적인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사실 어드밴처게임은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재미없는 게임일 지로 모른다. 지나치게 도식화되어 현실과 동떨어진 진행방식과 뻔히 결과가 보이는 선택문 게다가 한번 플레이한 이후에는 다시 하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는 외길진행까지 이 모든 것이 어드밴처를 상당히 수동적이고 재미없는 게임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플레이어는 스스로에게 (주인공에게) 던져인 질문과 의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능동적인 사고로 알맞은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 물론 <이브 버스트 에러>에서 게임오버는 존재하지는 않지만 무턱대로 아무렇게나 장소와 행동을 선택하면 정말 졸리고 재미없는 게임이 되어버리고 만다. 죽는다는 게임오버가 아닌 막혀버린다는 게임오버가 두려운 게임이다. 하지만 ‘미스테리 소설을 정독’하듯 수사에 참여하는 순간 <이브 버스트 에러>는 명작 미스테리 어드벤처의 진면목을 보여주게 된다.

 스토리는 하나의 소설 혹은 영화로 제작되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하다. 스토리에 포진해 있는 등장인물들의 성격도 매우 뚜렷하여 효과적으로 플롯을 이끌어가고 있으며 전혀 상관없는 두 주인공의 스토리가 하나로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예상치 못한 작은 반전들이 등장한다. 이 반전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을 통해 플레이어는 다음 단계를 생각하고 또 상상하게 되면서 미스테리의 재미를 느끼게 된다. 

상당한 긴장감을 보여준 쌍방향 동시 해킹장면

 

 두 주인공이 동시에 정부기관을 해킹하는 장면과 마지막 클라이막스가 진행되는 배에서 만나게 되는 장면을 거쳐가면서 점차 그림과 소녀 그리고 한 국가의 권력과 계승에 대한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할 때까지 플레어어는 함부로 결말을 예측할 수가 없게 된다. 스토리도 흥미진진하지만 그 스토리를 전개하는 스토리텔링은 더더욱 정교한 형태를 보여주는 이 게임은 그 진실로 다가가는 멀티 사이트 시스템이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수동적으로 아무 버튼이나 누르면서 서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플레이어에게는 그저 재미없는 그림과 텍스트의 복합체에 불과 하지만 능동적으로 텍스트속의 상황과 의문을 해석하는 게이머에게는 무엇보다 바꿀 수 없는 흥미진진한 미스테리드라마가될 것이다. 

 소소한 즐거움
 동시에 <이브 버스트 에러>에는 개인적으로 소소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유머가 작품전반에 퍼져있었다. 조금은 한량같고 여자가 꼬이면서 어려움에 쳐하기도 하지만 멋진 사나이 아마기 코지로, 문제아 취급을 받지만 같이 맥주한잔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호오죠 마리나가 격는 작은 사건들 혹은 주변사람들과의 말다툼 그리고 의외에 순간에 드러나는 진한 러브라인 등등 스토리의 흐름의 긴장과 완화를 이끌어내는 소소한 즐거움들이 지속적인 몰입을 돕고 있었다. 특히 마리나와 '그 남자'의 대화는 성인들만이 공감할 만한 잔잔하고도 야릇한 감성이 묻어난다.

어드밴처는 게이머의 권장도서
 사실 한국의 게임산업은 장르편식의 극단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내가 온라인게임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온라인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드밴처 게임이 발달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다른 게임의 서사구조가 탄탄해지는 산업의 인문학적 자양분이 되지만 한국게임시장은 그런 혜택은 받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아쉽다.
 
텍스트 어드밴처는 게이머로서 꼭 한번 거쳐봐야 할 교양서적 혹은 권장도서라고 생각한다. 기술적으로는 사실 글과 그림만으로도 충분한 명작이 나올 정도로 간단한 장르이지만 스토리텔링과 서사의 구성면에서는 가장 정교한 작업이 필요한 장르인 만큼 어드밴쳐게임의 가치는 절대로 평가절하 될 수 없다. 게임을 사랑하는 게이머라면 ‘시민케인’과 ‘벤허’를 보는 영화팬의 마음으로 <이브 버스트 에러>를 꼭 한번 즐겨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