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복무 시절 부대 중사는 나를 4차원이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내가 <헤일로> 시리즈의 팬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사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 인지 뭔지는 리니지였다.
몇 년 전 게임잼(하루 혹은 이틀동안 게임을 개발하는 대회)에 참가하여 미술대학 강사와 한팀이 된적이 있었다. 그녀는 게임이 아닌 예술을 하러 온 사람이었고 모두가 반대하는 재미없는 아이디어를 제시하여 팀원들을 짜증나게 했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눈물을 흘리며
“나도 스타크래프트 정도는 해봤어요!”
하고 소리치며 대회장을 뛰쳐나갔다.
한번은 지인의 부탁으로 나이 많은 대학원생에게 비디오 게임에 대한 자문을 해준 적이 있었다. 평생 대학에서 공부만 해온 그녀는 질문이 아닌 지적을 했다. 디펜스 게임의 첫번째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는 빈정거리는 말투로
“스테이지가 너무 짧은게 아닌가요?”
하고 지적했다. 나는 똑같이 빈정거리는 말투로 대답했다.
“튜토리얼이니까요”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정말 재미있어 보이는 게임을 봤다면서 나에게 유튜브로 한 게임의 홍보영상을 보여주었다. 리니지 라이크중 하나인 그 게임은 며칠 후 유저들의 외면을 받고 서비스를 종료했다.
개인적으로 게임 안하는 사람에게는 게임 이야기를 잘 안한다. 잠깐 스쳐지나가듯이 게임을 플레이 해본 사람에게 최근 하는 게임이 <킬러7>을 다시 플레이했다고 하면 무슨 소린지 못알아듣는다. 이해한다. <리니지> 하는 아저씨라면 나를 한심한 놈으로 볼 것이다. 단순히 비디오 게임 힙스터로서의 오만함이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을 통한 결론이다. 게임을 하겠다는 자발적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 ‘게임’의 재미에 대해 설명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더 스탠리 패러블>은 게이머로서 특별한 게임이다. 나와 같은 게이머라면 이 게임을 시작한지 5분도 안되서 탄성을 내질렀을 것이다. 게임이 시작되고 내가 혹은 스탠리가 사무실을 나가면서 하는 모든 행동은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다. 나의 모든 행동에 대해 언급하는 내레이터의 대사는 섬뜩하기 까지 하다.
사장실에서 능청스럽게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내레이터의 대사는 게임이 주인공과 게이머가 분리된 메타픽션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사실 게임의 플레이는 주인공이 아닌 게이머의 시각에서 보여지는 정보를 토대로 진행된다. 스탠리로 대변되는 주인공의 그 자유의지는 게이머에게 있다. 하지만 그 게이머의 자유의지는 내레이터로 대변되는 개발자가 만든 시스템 안에 묶여있다. 하지만 그 자유의지에 대한 주도권과 범위가 달라짐에 따라 게임의 장르가 달라진다. 그리고 게이머가 그 주도권에 선을 넘으려고 하면 게임이 재미있어진다. <더 스탠리 패러블>의 다양한 엔딩처럼 말이다.
철저하게 내레이터의 말에 따르던 모든 명령을 거부하든 정답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엔딩을 찾아가는 여정은 마치 게임의 발전사를 따라가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스탠리 패러블>의 장르는 어드벤처가 아니다. 이 게임이 장르는 ‘게임’ 그 자체다. <더 스탠리 패러블>은 비디오 게임을 사랑하는 게이머들을 위한 성찬이다.
다양한 엔딩을 보기 위해 다양한 선택을 하고 맵을 탐색하는 과정이 충분한 재미를 보장하기 때문에 <더 스탠리 패러블>은 어드밴처 게임으로서도 가치가 있다. 사무실을 배경으로 한 현대인의 삶에 대한 은유로도 해석할 수 있으며 인생과 선택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스팀에 로그인 해본 적도 없으면서 게임의 스토리텔링을 논하는 강사들, 친한 형님 계정에 집행검 어쩌저쩌고 헛소리하는 얼치기 도박꾼들이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게이머를 위한 성찬이다. 이 게임을 재미있게 즐긴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나는 같은 게이머로서 그를 뜨겁게 포응할 것이다.
질릴 정도로 이 게임을 즐긴 후 내가 게이머로 살아와서 다행이라고 느껴진다. 스탠리 반가웠어요. 내레이터 잘했어요. 말하는게 좀 재수없긴 했지만 그래도 고마워요. 이게 끝이 아니에요!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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